카인의 징표
브래드 멜처 지음, 박산호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의문을 풀어가는 주인공의 영웅적 행동, 또 그 미스터리한 의문이 하나씩 풀려갈 때마다 터지는 감탄사, 그리고 일 초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긴박감까지 처음 이 책을 접할 때 나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고고학적 유물을 추적하고 그 비밀의 열쇠를 해독해가는 과정까지 완전히 닮은꼴로 여겨졌다. 하지만 어쩌랴! 그 흥미진진함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한번 책에 눈길을 준 이상 절대로 시선을 돌릴 수 없는 것을.

실은 이런 측면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일부러 피한다. 일단 발을 들여놓게 되면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아무 것에도 눈길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에 그치지 않고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나를 사로잡아 저자의 다른 책으로 전염병처럼 옮아간다. <다빈치 코드>를 통해 댄 브라운을 접할 때도 그랬다. <다빈치 코드>를 읽은 후, <천사와 악마>, <디셉션 포인트>, <디지털 포트리스>까지 섭렵하고서야 댄 브라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엔 이 책의 저자 브래드 멜처다. 그가 내 영혼을 온통 사로잡아 버렸다. 당분간 그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이토록 그가 나를 뒤흔든 것은 댄 브라운에서 벗어난 이후 또 다시 미스터리 추리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댄 브라운 식의 미스터리 추리 소설은 이제 좀 식상하다. 만약 브래드 멜처가 끝까지 댄 브라운과 닮은꼴로 여겨졌다면 나는 굳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브래드 멜처만의 매력을 발견했다. 그에겐 그만의 스타일이 있다. 댄 브라운과 전혀 다른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것이 나를 더욱 그에게 관심을 쏟게 만든다.

댄 브라운은 나를 최초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매력에 흠뻑 젖게 했지만 그만큼 나를 허탈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사건의 전개 속에서 한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못하고 주인공에 동화되어 결국 종국에 이르렀을 때의 공허감, 그 순간 ‘도대체 내가 무얼 쫓아온 거지?’라고 되묻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소설의 흥미에 빠져드는 순간 마치 내가 비밀의 열쇠를 캐내는 주인공이나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사건이 종결된 후 마지막에 내게 남겨진 것은 갑자기 텅비어버린 머리뿐이다. 그건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깔깔 웃다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과 똑같다. 그건 시간을 때우는 하나의 오락물이다.  

브래드 멜처는 다르다. 우선 그가 창조한 캐릭터는 인간미가 넘친다. 그들은 대부분 인간적 상처를 안고 산다. 겉으론 영웅처럼 보이지만 영웅이 아니다. 우리에게 슈퍼맨으로 불리는 클라크 켄트도, 슈퍼맨을 탄생시킨 제리 시걸도, 고고학적 유물을 추적하는 주인공 캘빈 하퍼도 모두 마음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다른 목적으로 목숨을 걸고 카인의 징표를 찾는 이들도 하나같이 상처 입은 영혼들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목적으로 카인의 징표를 찾아 나선다. 그러다 그 과정에서 운명처럼 서로 엮어진다. 보물을 향한 인간적 욕망의 엮임이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만들어 내기에 독자인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선 애초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슬픈 운명에 공감하기에 이어지는 살인에도 오히려 등장인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 스스로가 그런 애정을 가지고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생각된다.

둘째로 저자의 이야기엔 가족이 있다. 서로의 상처를 염려하고 보듬어주는 가족이 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 아닌데도 처녀의 몸으로 죽은 동료의 아들을 자식처럼 돌보는 연방경찰 나오미, 부부 싸움 도중 아내를 밀쳐 죽음에 이르게 한 아버지를 19년 동안 기다린 주인공 캘빈 하퍼, 겉으로 와는 달리 내심으론 아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지워내지 못한 캘빈 하퍼의 아버지 리오드 등은 내게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게 한다. 무엇보다 거리의 부랑아들에게 새로운 쉼터를 안내하는 주인공 캘빈 하퍼의 삶이 소설 내용의 긴박함 속에서도 가정에서 느끼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셋째로 영혼을 뒤흔드는 강렬한 메시지가 있다. 카인의 징표가 바로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결국 그 비밀의 징표에 담긴 메시지를 찾아 끝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것이다. 그 징표는 인간적 화해를 이야기 한다. 그들이 찾던 징표인 ‘궁극의 그림’은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있는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지극히 소박한 내용이다. 주인공은 독자와 함께 그 궁극의 그림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림이 던지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가족 간의 대화, 이야기, 소통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진부한 결론이지만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무릎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무슨 신비한 주문이나 마법 같은 주술이 아닐 것이다. 그저 평범한 부자간의 대화, 그건 ‘너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메시지이다.

 이전에 내가 접한 미스터리 추리 소설과 다른 이런 몇 가지의 핵심적 요소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오히려 마지막 장의 극적 반전이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내 심중을 자극하는 감동의 여운으로 오래도록 남았기에 중간에 읽기를 멈췄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책은 오락적 요소의 추리가 남기는 허탈감과 확연히 구분되는 미묘한 뒤끝이 있다. 그것의 징표는 눈물 자국으로 남는다. 카인의 징표가 던지는 메시지를 접한 주인공의 눈에서 저절로 흐르는 눈물. 그것은 고스란히 내 마음에 전이되어 내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게 했다. 캘빈 하퍼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슬픈 기억으로 눈가가 슬며시 젖었듯이 나 또한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힌 것이다.

나의 눈물은 회한의 눈물이다. 평생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한 아버지를 내심 무시한 내 스스로의 죄책감의 표식이다. 아들을 낳고 기르면서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무능한 아버지도 늘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며 나름대로 노력하셨다는 것이 이제는 내 눈에 보인다. 다만 그분의 능력이 그 열정에 미치지 못해 가끔 실수를 하신 것뿐이란 것을 이젠 진심으로 느끼고 있다. 카인의 징표는 이런 나의 죄책감을 다소나마 씻어준다. 그리고 앞으로 그 죄책감을 말끔히 씻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또렷이 보여준다. 이제는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아버지에게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또한 먼 훗날 아버지를 회한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아들에게도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겠다. 그것이 카인의 징표인 ‘진실의 서’를 내 인생의 보물로 영원히 간직하는 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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