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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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큰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초기의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젠더 가치관에 나비 효과를 일으킨 작가 조남주가 새로운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 신작, ‘사하맨션’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어느 기업이 낙후된 도시에 투자를 하자, 도시는 기쁜 마음에 기업에 각종 혜택을 준다. 그러나 그 혜택은 독이 되어 도시는 파산을 하게 되고, 기업은 그 도시를 인수하여 독립된 도시국가, ‘타운’이 된다. 자본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주민, 수치스러운 조건을 통과하면 계약직 인생 L2 되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하’라고 불린다.

사하는 사전적으로 쏟아져 내려간다는 뜻이다. 끝없이 아래로 몰락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표현이다. 사하는 건설이 지지부진한 맨션에 입주하여 살아간다. 애초에 맨션은 자본력이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시설을 의미한다. 맨션 시설은 열악하고, 사하는 국가의 지원은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장 하층 계급이 상류 계급의 상징인 집에서 산다는 것은 모순이며 이 두 계급의 간극을 독자들에게 더 넓혀 보여준다.


-음각으로 새기고 녹색 페인트를 채워 넣은 ‘사하맨션’ 글자가 ‘사하’와 ‘맨션’으로 나뉘었다. 사하맨션. 사하, 맨션. 표지석의 ‘사하’ 글자 뒤쪽으로는 검고 커다란 쓰레기 봉지들이 산짐승의 시체처럼 축 늘어진 채 쌓였고, 누런 오수가 흐르고 있다. (p.34)


갈라진 간판은 어우러질 수 없는 두 계층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층 계급을 의미하는 ‘사하’의 글자 뒤에는 쓰레기 봉지들이 널리고 오수가 흐른다. 상류를 의미하는 ‘맨션’의 글자가 아니라 하류를 의미하는 ‘사하’의 뒤에 널린 쓰레기는 사회적 약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타운이 생기면서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에도 떠나지 못하고 맨션에 묶여 살며 사회적 디아스포라가 된다. 디아스포라끼리 생활과 규범, 관습을 유지하며 지내듯, 사하맨션 사람들 역시 그들끼리의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한다. 사하들의 공동체는 그들이 살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다.

하지만 사하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으며 통제가 가득한 헤게모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강제적으로 사회적 디아스포라가 된 이들은 그들의 정체성마저 방향성을 상실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누굴까. 본국 사람도 아니고 타운 사람도 아닌 우리는 누굴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누가, 나를, 용서해 주지? (p.51)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 제자리이다. 과거 소위 ‘나비 혁명’을 일으켰으나 흐지부지 실패한 기억들은 그들에게 저항심마저 짓누른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망이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살아만 있는 거 말고 제대로 살고 싶어. 제대로 사는 일. 어쩌면 내 혼란과 의문의 맥락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p.272)

-아무것도 몰랐다. 이렇게는, 살았다고 할 수 없겠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겠지. (p.325)


사하들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욕망은 나비 효과처럼 점점 확장된다. 작품 곳곳에 나비에 대한 메타포가 이를 암시한다. 허망하게 삶을 살다가 점점 신념을 가지고 끝내는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죠. 신념은, 그 자체로는 힘이 없더라고요. (pp.283-284)


신념 그 자체로는 힘이 없다. 생각만 하면 거기에서 그칠 뿐이다. 작품 후반, 진경이 행동에 옮긴 것은 나비 효과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태풍’이다. 이 태풍은 사하들의 진정한 삶이라는 욕망이 응집되어 있으며 총리관 습격이라는 실천으로 구체화된다. 타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진실을 알아버린 진경의 좌절은 이미 사하들의 선례를 보았을 때 당연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경의 말은 타운의 예측을 벗어난다.


-당신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 (p.368)


겉으로 보기에는 사하맨션에서 전처럼 삶을 이어가기에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하는 사그라든 듯했던 저항심이 다시 불씨를 잇고 있다.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은 미약한 불씨도 큰 불로 번질 수 있다. 비록 사회적 약자들은 당장 큰 변화를 주지 못할지라도 이들의 미약한 불씨는 점점 나비 효과처럼 번져 나갈 수 있다. 절대로 강자는 약자를 위해 그들의 권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개인 단위라면 간혹 그럴 수는 있어도 집단에서는 더더욱. 약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그들이 행동할 수밖에 없다. 신념 그 자체로는 힘이 없다고 했던가. 약자들의 신념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적극 소리를 내고 부딪쳐야 한다. 유리 천장이라는 용어가 있다. 위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장벽을 의미한다. 하지만 왜 굳이 ‘유리’일까. 유리는 아무리 단단해도 힘에 부칠지언정 깨진다. 방탄유리도 무한정 총을 막아주지 못한다. 우리들의 끝없는 목소리와 부딪힘은 언젠가 한계에 다다른 사회의 방탄유리를 깨부술 단 한 발의 총알을 장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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