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읽은 뒤 책을 덮으면 남는 것은 깊은 여운이다. 텍셀은 자신이 내면의 악마라 칭한다. 그리고 사람은 다 자신의 격에 맞는 범죄자를 갖고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실수와 죄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각자의 안에 잠겨 있다. 그것은 뻔뻔한 악당일 수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는 죄인 일 수도 있다. 내 안의 범죄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 즐거운 책이 던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적 사유에 나오는 것은 감탄뿐이다. 프루스트의 나라는 달라도 다르구나 부러울 뿐이다.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지만, 10년이 지나 다시 읽은 책의 남다른 깊이감에 눈이 간다. 책의 제목인 '화장법'이란 대체 무슨 뜻일까? 화장은 자신의 추함을 가리는 위장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식의 화장법이란 자신의 은폐, 엄폐를 위한 일종의 위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악의를 숨기고 우아한 표정을 내보인다. 적의 화장법은 그 비겁한 표면을 비웃는 소설이다.
아멜리 노통의 '적의 화장법'은 꼭 읽어 보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책은 경장편으로 금방 읽힌다. 위에도 적지 않았는가 재미와 깊이를 함께 선물하는 작품은 흔치 않다고.
ps. 십 년 전 읽었을 때보다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번역의 힘인 걸까, 아니면 그 사이 나의 정신이 성숙해진 걸까. 둘 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 책에선 번역의 공이 큰 것은 사실이다. 평론가가 번역한 책은 흔치 않다. 얼마나 책에 애정이 넘치기에 평론가가 번역까지 했을까. 박철화 평론가가 책에 가진 애정만큼 직접 진행한 번역은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적의 화장법'을 읽고 많은 평론가가 번역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후기에 번역가가 직접 기술한 작품 해설도 있으니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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