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박철화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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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로 사건과 화제를 만들어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말의 카운터펀치.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지인의 말처럼 프랑스 작품은 수다스럽다는 말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을 단순히 수다스러운 작품으로 평가하기엔 위험하다.

'적의 화장법'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놀라움 - 경악 - 혐오 - 어이없음 등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선물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와 화두에 놀라움이 이어진다. 말싸움으로 독자들을 멱살잡이하며 마지막 장까지 끌고 가는 소설이다.

이 책의 매력은 대화에만 있지 않았다. '적의 화장법'에는 인간 내면 그 안에 자리한 악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서양철학의 전통과 신학 사유가 함께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던지는 대화와 툭툭 던져지는 사건들은 이야기를 극도의 긴장과 예기치 못한 상황과 파국으로 이어진다.

대화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의 결을 만들어 내는 작가라니. 책의 내용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을 펼친 독자들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 자신의 격에 맞는 범죄자를 갖고 있는 법입니다.

적의 화장법 중에서

재밌게 읽은 뒤 책을 덮으면 남는 것은 깊은 여운이다. 텍셀은 자신이 내면의 악마라 칭한다. 그리고 사람은 다 자신의 격에 맞는 범죄자를 갖고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실수와 죄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각자의 안에 잠겨 있다. 그것은 뻔뻔한 악당일 수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는 죄인 일 수도 있다. 내 안의 범죄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 즐거운 책이 던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적 사유에 나오는 것은 감탄뿐이다. 프루스트의 나라는 달라도 다르구나 부러울 뿐이다.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지만, 10년이 지나 다시 읽은 책의 남다른 깊이감에 눈이 간다. 책의 제목인 '화장법'이란 대체 무슨 뜻일까? 화장은 자신의 추함을 가리는 위장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식의 화장법이란 자신의 은폐, 엄폐를 위한 일종의 위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악의를 숨기고 우아한 표정을 내보인다. 적의 화장법은 그 비겁한 표면을 비웃는 소설이다.

아멜리 노통의 '적의 화장법'은 꼭 읽어 보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책은 경장편으로 금방 읽힌다. 위에도 적지 않았는가 재미와 깊이를 함께 선물하는 작품은 흔치 않다고. 

ps. 십 년 전 읽었을 때보다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번역의 힘인 걸까, 아니면 그 사이 나의 정신이 성숙해진 걸까. 둘 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 책에선 번역의 공이 큰 것은 사실이다. 평론가가 번역한 책은 흔치 않다. 얼마나 책에 애정이 넘치기에 평론가가 번역까지 했을까. 박철화 평론가가 책에 가진 애정만큼 직접 진행한 번역은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적의 화장법'을 읽고 많은 평론가가 번역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후기에 번역가가 직접 기술한 작품 해설도 있으니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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