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그 너머의 존재에 대해
'우주 상상력 공장'은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넘나드는 책이다.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주제가 '존재'에 대한 고찰이다. 과학에서의 존재란 '물질'이며 이는 양성자와 중성자라는 존재로 더 세부적으로 쪼개다 보면 아직 관찰되지 않는 '쿼크'라는 존재까지 다다르게 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이야기는 과학에서 존재란, 물질이지만 비물질을 추가하는 것과 같다.
미국 시인이자 사회활동가인 뮤리엘 러카이저는 '세계란 원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라 표현한다. 저자는 과학자로선 쓰린 이야기지만, 이 표현은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의 결과라 설명한다. 텍스트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 존재라 저자는 설명한다. 타인을 묘사하는 것, 세계의 지역 모든 것이 텍스트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 이면의 타인의 내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의 그 이면을 해석하는 것 그것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존재론적이라 설명한다.
그래서 우주는 원자로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물질을 포함하며 그 모든 것들을 각각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창조와 진화, 끝없는 논쟁
과학과 종교의 예민한 논쟁. 많은 이들이 기피할 것 같은 이야기를 저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설명한다. 우리 주변을 움직이는 생명체들은 알면 알수록 오묘하고 신비한 생명체이다. 이 신비한 생명은 우주의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손에서 연구 개발되는 진화론은 완벽한 학문이 아니다. 그 안의 이론들을 끊임없이 수정되어 완벽이란 이상을 향하 달려가는 중이다. 창조론은 진화론과 대비되는 오류 속에도 틀릴 수 없는 완벽, 이상이다. 그 상충과 모순을 저자는 우문현답으로 답한다.
창조론은 옳을지 모르지만 과학이 아니고, 진화론은 틀릴지 모르지만 과학이다.
종말, 태종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세상에도 끝이 있고, 당연히 우주도 끝이 존재한다. 진정한 시작과 끝을 태초(太初) 태종(太終)이라 부를 때, 이는 과학에서 답하기 어려운 이야기라 말한다. 과학은 시작 후의 학문이자, 끝나기 전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철학의 문제일 수 있지만, 과학의 증명적인 논제가 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다. 확실히 어려운 이야기다.
종말 이후에는 무엇도 없는 무의 영역이어야 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생명, 정신, 과학, 종교의 종말은 인문학과 과학의 영역을 넘나드는 심도 깊은 고찰의 철학적 영역을 논한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말하는 영원과 그 이후의 무의 세계. 별까지는 고사하고 지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애처로운 존재들이 생각하는 무한한 우주와 영원에 대한 이야기는 위대한 것일까? 애처로운 것일까? 아니면 서글픈 것일까? 저자는 TS 엘리엇의 글로 끝을 맺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라네
뱅이 아니라, 흐느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