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펼치면 SF가 줄 수 있는 궁극의 환상과 상상력의 문이 열린다. 알 수 없는 세계 그 차원의 틈을 통해 우리의 미쳐버린 현실과 뒤틀린 인간의 욕망에 대한 듀나의 조소는 여전하다.
면세구역에서 읽었던 '동전 마술'은 '물음표를 머리에 인 남자'와 같이 독자들에게 의문을 선사한다. 차원의 틈으로 동전이 사라진 이유와 물음표가 머리 위에 나타난 이유를 작품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엔딩에서도 이야기를 닫아 주지 않는다. 대체 우리가 읽은 것의 의미와 저자가 이 이야기를 쓴 의미는 뭐였을까? 상상력이 빈자리를 메꾸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작품인 '메리 고 라운드'와 'ABCDEF'는 비틀린 인간관계가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어렸을 때는 점점 극화되는 메리 고 라운드의 폭력을 좋아했지만, 이번에는 ABCDEF에서 관계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울었다.
작가의 전작 '첼로'가 떠오르는 '소유권'은 로봇이라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파괴하는 존재와 '호텔'에서는 정점에 달한 시유라는 캐릭터가 존재한다.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가 즐겨다루는 소재로 마지막의 반전까지 읽는 재미를 담보한다.
표제작인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는 조금 재미가 가미된 서부극일까? 싶었다. 브로콜리는 귀엽고 평원의 혈투답게 피와 살육이 난무한다. 외계인은 인간들을 잡아들여 재료로 삼지만, 인간은 그들을 관찰하며 역으로 그들을 이용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인간은 인간이다 싶은 이야기들. 특히나 이 안에 버무려진 남북의 이념과 빨갱이라는 말을 교묘하게 비꼰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조소까지. 인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와 함께 링커 우주를 다루고 있는 '안개 바다'는 각기 다른 인간 군상과 링커 생태계라는 진화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뒷골목에서 생길 것 같은 사건사고 SF부터, 조선시대, 외계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와 탈북민에 대한 시선까지 책 한 권에 담긴 다양한 소재와 이를 SF 적으로 연결하는 상상력 이 모든 것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야기의 폭이 넓다 보니 마치 앤솔로지를 읽는 느낌이다. (SF 작가는 얼마나 잡다한 지식을 가져야 쓸 수 있는 직업일까, 감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