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종, 계급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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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라는 운명을 대물림하느니 차라리 딸은 죽인 흑인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빌러비드' 흑인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인권 운동가인 토니 모리슨은 많은 산문과 연설을 통해 흑인 여성의 인권과 계급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빌러비드'는 여성 노예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을 쓰면서 그녀는 흑인과 백인, 여성과 남성, 빈부의 격차를 통해 계급이 구분되고 인권운동의 혜택을 받는 것 또한 제한된다고 적었다. (인권에 대해 다양한 글을 읽으며 토니 모리슨 사후 국내에서 발간된 '보이지 않는 잉크'에서는 문학과 인권에 대한 토니 모리슨의 주옥과 같은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녀는 다양한 소수자의 이야기를 적고 이 부당함에 대해 호소했으나 장애인권의 영역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니 인권운동의 좁은 시야와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부터 시작하여 '빌러비드', '보이지 않는 잉크' 그리고 퀴어 SF 소설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까지 소수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와 독자들이 고분을 한다는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생긴다. 페미니즘 서적의 고전으로 불리는 '여성, 인종, 계급'은 권력이 어떻게 약자들의 투쟁을 파이 다툼으로 만들며 서로 적으로 싸우게 만드는지를 설명하고 있다고 들어 한 번 읽고자 했던 도서였다. 알고 있지만 읽을 수 없던 좋은 서적을 번역해 준 아르떼 출판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국의 근대가 식민주의와 함께 '실현'되었다면, 흑인에게 근대는 사람도 시민도 남성도 여성도 아닌 노예로부터 시작되었다

해제 제국주의와 흑인의 탄생 중에서

모든 독립운동은 소유물이라는 인식에서 자신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인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흑인운동은 말 그대로 노예라는 상품을 인간이라는 가치로 전환하는 과정이었다. 이 안에서 '번식용'으로 더욱 가치를 인정받았던 노예 여성, 그리고 남편 소유물로 간주된 백인 여성들이 '여성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여성들은 권리의 시작을 참정권으로 보았다. 이 운동은 처음에는 유색인종의 구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나중에는 남성 노예의 참정권만 인정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백인 여성들은 인권 운동을 전개하면서 흑인 여성들이 노예제 폐지와 참정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등권 협회는 마지막까지 흑인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드러나지 않은 계급과 차별, 그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책이 여성, 인종, 계급이란 제목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는 종종 수렴하고, 따라서 백인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유색인종 여성의 억압적인 난관에 연결되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므로 백인 여성 가사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항상 흑인 여성 하인의 임금을 계산하는 데 사용되는 인종주의적 기준에 맞춰 고정되었다.

그들은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은 존중되었다. 그것으로 끝인 걸까. 세상은 평화를 찾고 세상의 모두는 평화로워진 것일까? 인종차별은 현재까지 지속적인 논쟁을 이어오고 있다. 여성인권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그 영역을 넓혀 확산되고 있다. 몇 년 전 한국의 여성인권 단체가 장애인 인권단체의 연대를 거부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가고자 하는 노선이 다르다는 것이 이유였다. 흑인과 백인의 차별을 이야기하던 미국에서는 동양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동양인들이 2세대 3세대에 걸쳐 정착하게 되면서 하나의 세력화가 되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성인권 운동의 흐름은 인권운동의 역사와 그 한계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함께 싸웠으나 그 권리를 마지막까지 인정받지 못했고, 인정받는 과정에서도 그 한계가 명백히 보인다. 같은 여성임에도 피부색이 다라다는 이유에서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못했다. 흑인 인권운동은 여성을 배제했고, 여성인권운동은 흑인 여성을 배제했으며, 현재 이어지는 여성인권운동은 장애인을 품지 못한다. 이는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다. 그 이유와 한계를 알아가는 과정은 장애인과 노동자,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되어줄 것이며, 함께 연대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길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앞으로 이러한 책이 더욱 많이 다양하게 출간되어 단단하게 서 있는 세상의 벽을 눕혀주기를 바란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 안젤라 데이비스의 그 말 그 의미 그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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