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잠 시작시인선 427
수피아 지음 / 천년의시작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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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과 다른 방식의 언어야, 나는

은유의 잠 중에서

은유의 잠에 실린 은유의 잠을 읽던 중 이제 당신과 다른 방식의 언어야, 나는 그 문장에 꽂혀버렸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온 문장일까. 순간 책이 보고 싶어졌다. 미끄러지는 듯한 문장과 마침점 같이 붙은 단어. 이어진 단어와 연결된 문장은 어디로 데려갈까. 낯설고 이국적인 독특함.

문장은 나무, 시는 거대한 숲이 된다.

단어는 나무가 되었다가 산짐승이 되었다 이내 숲이 된다.

문장과 단어는 행과 연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둥둥, 이 층 코너 쪽방에서 내려다보이는

굴다리 지나 재래시장 맨 끝에 있는 얼음 가게는

남극에서 막 떠밀려 온

커다란 일용직 유빙이에요

가지런히 놓인 단어들 사이에 튀어나온 단어들.

정렬된 문장 속에 정렬되지 않은 단어들.

출판사 책 소개에서는 일상의 질서 속에 포착할 수 없는 사태들이라 표현한다.

시는 다양한 일상을 그린다. 함박눈과 폭설, 비와 뙤약볕, 어딘가 이국적인 섬과 일터, 정경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일탈을 꿈꾸는 듯하다. 의사는 망가진 몸을 고쳐 쓰라 말하고, 나무를 뚫고 나오는 이파리에게 날개가 돋는다 표현한다. 서류에 스테이플러를 찍다가 눈에 박힌 스테이플러 심을 뽑기도 한다. 아름다움과 몰상식, 일탈과 파괴가 반복된다.

틀에 끼워 놓고 나를 거칠게 묘사하는, 연필 한 자루가 있는 저녁

시간을 습작하다

이 책의 제목은 왜 '은유의 잠'일까. 은유는 잠들지 않은 채 날뛰고 있는데 말이다.

큰맘 먹고 눈을 깜빡이며

속눈썹을 휘저어 보지만

가볍고 길고 가느다란 슬픔처럼

지금 잡히지 않는 것이 있다고 치자

여우 속눈썹 중에서

모든 시가 같을 순 없다. 독특한 표현으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정적이고 멋스러운 문장으로 쓰였거나, 일부는 평이한 문장으로 일상의 정경을 묘사한 시들도 있다. 나쁜 글이 아님에도, 표현들이 강하고 독특하다 보니 심심해라는 생각을 하고 만다. 독자를 만족시키는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구나.

참신한 표현과 매력적인 묘사를 좋아한다면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런 표현들을 읽다 보면 뇌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시를 읽으면서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는데, 신기한 책이야라고, 몇 번 중얼거렸다. 두고두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 참신함이 상투적이 되는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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