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미끄러지는 말들' 이 책에서는 대통령의 두 가지 말하기가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말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하기는 이 책에서 말하는 논거와 일치되는 부분이 있지 않기에 굳이 예시로 들지 않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중이 말하는 언어를 사용했다. 그가 사용한 통속적 언어는 전통적인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그는 서민의 언어를 사용했다. 일부 저속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저어하지 않았다. 보다 친근한 언어를 통해 화제를 전환하고자 했으나 그의 말하기는 실패했다. 저자는 대통령의 언어는 정제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 그간 읽어 온 책 속의 문장들이 등을 돌린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서민의 언어, 노동자의 언어는 이해해야 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적는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런 언어를 써서는 안된다며 우아하고 고아한 정제된 언어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편견이 아닌가. 어째서 이렇게 적는지 부가적인 설명이 없어 이렇게 말하는 저자를 의견을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토니 모리슨이라고 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녀가 흑인 여성으로 노벨문학상을 최초로 받은 여성작가여서가 아니다. 기존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귀족 가문의 여성으로 한마디로 귀족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 토니 모리슨이라는 여성 작가는 흑인들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와 욕설을 사실적으로 기술한다. 당시 시대는 그녀의 언어를 천박하다 손가락질하고 욕했다. 토니 모리슨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차별을 뛰어 넘어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가 되었다.
토니 모리슨이 그런 언어를 쓴 이유는 명백하다. 흑인들의 주장과 의견을 대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그녀는 그들과 같은 말하기를 사용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하기는 이와 달랐을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왜 실패했는지가 언어에서 발생되는가. 저자가 예시한 대통령과 검찰의 담화는 학벌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대통령을 비꼬기 위해 검찰이 던진 말이 그 앞에 존재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언어 한 가지만으로 보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처럼 보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대중과 서민들이 자신과 같은 말을 쓰는 대통령을 통해 자신의 민낯을 보기 싫었다면 그것이 대통령의 문제인가. 저자가 쓴 글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서민을 대변하고자 한 정권이었으나 미숙함이 적지 않았다. 그 모든 부분을 감싸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언어에서 찾는다면 저자는 자신이 쓴 글을 다시 보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국회의원은 근로가 아니라 노동을 해야 한다면, 대통령이 서민의 언어를 쓰는 것은 왜 문제가 되는가. 대통령의 말하기는 다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다.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적어도 미끄러지는 말들이라는 책 속에서 저자의 의견과 반하는 내용이었다면 차라리 덜어내는 것이 나았다는 아쉬움이 끝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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