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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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트럼프라는 대통령이 당선된 일은 미국 내에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미국의 언론과 인문학자들은 트럼프 현상을 분석했다. 덕분에 관련된 다양한 서적을 읽고 서평을 올렸던 2년이었다. 노벨상을 심사하는 철학자 오사 빅포르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듯하다.

저자는 트럼프의 당선, 그 배경에 있는 가짜 뉴스에 집중했다. 활성화된 가짜 뉴스로 인해 거짓과 진실은 위치를 바꾸거나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많은 것들이 가짜였으나 사람들은 이를 신앙처럼 신봉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과부하 된 정보화 사회 쏟아지는 뉴스가 사람들의 눈을 가렸다. 넘쳐나는 뉴스 중에서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마치 남의 일 보듯이 볼 일인가. 기자를 기레기라 부르는 사회. 뉴스 기사를 찌라시 취급하는 사회. 우리 역시 가짜 뉴스에 자유로울 수 없다.

철학이 무너진 사회에서 저자는 철학의 역할을 설파한다. 세계적인 철학자는 다양한 인문학 분야를 넘나들며 진실의 역사, 사실, 거짓, 지식 등이 어떻게 정의되는지 개념을 살핀다. 보다 나아가 진실을 지키기 위해 대중, 언론, 전문가의 소임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행동 방안을 제시한다.

진실은 의심받고 있다

이 책은 사실과 진실을 알기 위해 그 구조를 이루는 지식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은 사실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지식에 저항하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사실을 알기 위해서 그 안에 있는 지식을 먼저 알아야 한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 믿음이 진실이어야 하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좋은 근거가 있어야 한다.

지식을 보는 우리의 눈은 편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바라는 진실에 좀 더 가까울 때,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지식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는 믿게 된다. 믿게 되는 순간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의미를 잃는다. 또한 우리의 시야는 좁기에 많은 근거가 되는 지식을 살필 여력을 갖지 못한다. 이론 인해 많은 이들은 신뢰할 만한 인물, 내가 신뢰하는 언론의 주장을 사실인 양 받아들이게 된다. 언론이니 좋은 근거를 당연히 가질 것이라 여긴다. 지식은 이렇게 오염이 되고 사람들은 잘못된 지식을 사실인 양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진실은 항상 옳은가? 진실은 우리는 대변하는가? 진실은 지극히 객관적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을 대변하지 못한다. 그 사실이 진실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거나 득이 된다는 법은 없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확증편향'된 시각으로 지식을 받아들인다. 또한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에 맞는 정치적으로 '의도된 합리'를 진실인 양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진실인 양 받아들이는 '인식의 왜곡'은 이렇게 생겨난다.

그들의 목표는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지도자를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거짓말과 가짜 뉴스, 그리고 선전은 우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감옥에 보낸 사안 중 하나인 'BBK 실 소유주'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당시 주요 현안 중 하나는 자신이 BBK의 실소유주라 말하는 대학 강의 동영상이었다. 당시 나경원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의 말에 주어가 없다는 이유로 그가 실소유자가 아니라 주장했다. 그 논리를 받아들여졌고, 이명박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사건과 함께 진실은 미궁으로 가라 앉는 듯 했다. 결국 거짓은 밝혀졌고, 그는 개인 비리로 인해 감옥에 수감된 대통령이 되었다.

이는 미국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스캔들 당시 이를 부정하는 클린턴의 말에 is 논박이 벌어졌다. 빌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정하며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there is nothing going on between us"라 진술했다. 나중에 그들의 부적절한 관계가 사실로 밝혀져 법적 소송이 진행되자 빌 클린턴은 is의 의미를 현재라 말하며, '현재 아무 관계도 아니다'라고 해석한다. 교묘한 말장난으로 그는 대통령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으나 언론과 국민은 그를 '야비한 윌리'라 부른다.

이렇게 정치인들은 섹스 스캔들이나 뇌물 수수, 팩트 체크가 까다로운 일 등 개인적인 사건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많은 정치인들은 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거짓과 진실을 뒤흔든다.

트럼프의 거짓이 실수와 무책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거짓이라고 말이다. 트럼프는 자신을 공격하는 언론의 논거를 거짓으로 반박하고 비난을 왜곡한다. 동시에 자신을 인신공격의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만든다. 언론은 당혹스러워했다. 그 흔적이 위에 링크 된 책들이다. 특히 '세상 곳곳에 포진한 무지한 자들과 대화하는 법'은 당시 트럼프를 대한 언론이 얼마나 분했는지가 확실히 느껴진다. 제목을 보라... 언론의 짜증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지 않은가.

저자 오사 빅포르스는 트럼프의 이런 행위가 전체주의 국가의 선전에나 어울릴 법한 교묘한 전략이라 주장한다. 트럼프는 진실과 거짓의 관계를 기묘하게 뒤섞으면서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보다는 자신의 말에 따르도록 선동했다. 이를 거짓말쟁이나 헛소리꾼으로 묘사할 때,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상황은 훨씬 더 암울해질 수 있다. 트럼프의 목표는 전체주의 지도자의 목표와 동일했다. 현실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미국 내 흑인과 이민자들을 파괴하면서 미국을 오직 강한 자만이 구원할 수 있는 무법 국가로 묘사한 것이 그런 의도에 가깝다.

지속적인 거짓말의 효과는 거짓을 진실처럼 받아들이게 하고 진실을 거짓이라 선고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대한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거짓말과 가짜 뉴스, 그리고 선전은 우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가짜 뉴스 근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교육, 언론, 사회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라고 말한다. 비판적 사고를 이루는 구조물은 사실적 지식이다. 때문에 언론에서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출처 비평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토론에는 팩트체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아닌 주장에는 '아니라고'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토론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신공격보다 사실적 지식의 집중과 이로 인한 검증이다. 특히나 이 근간이 되는 출처에 대한 검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읽고 나서

진실의 조건, 이 책은 여러모로 어렵다. 목차만 봤을 때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 상상도 못했다. 플라톤부터 칸트까지 모든 철학 이론들이 총출동한다. 각주도 꼼꼼하게 달려있는데, 읽고도 이해를 못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를 원망하지 않도록 하자.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어려운 책은 최근 자주 만나고 있다. 최근 읽은 '예술, 진리를 훔치다'가 최고일 것이라 예상했다. 난이도는 역대급. 싸우는 느낌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정리를 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이런 책은 서평이라기보다는 어설픈 요약에 가깝다. 어설프기 때문에 이 서평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대충 훑은 서평이 맘에 들었다면 책도 읽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 고통 나만 당할 순 없지.

철학자의 시선으로 본 가짜 뉴스, 그 근본적 문제와 해결 방안. 다양한 인문학적 관점과 철학자의 시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관점에 계속 환기가 되며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철학의 세계는 신기하다. 많은 인문학 서적이 말하는 뻔한 얘기를 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 조금 다른 각도에서 얘기하는 관점을 읽으면서 재밌게 느꼈다. 이것이 공부하는 재미인 걸까. 확실하게 이 책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짜 뉴스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부분이다. 언론에게 다른 역할들에게 부여되지 않은 '대안적 사실'을 전하라는 임무는 가짜 뉴스를 잡는데 큰 역할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내의 언론들은 경제의 자본과 정치의 권력과 연계되어 진실을 전하는 힘을 잃게 되었다. 그런 그들에게 '본분'을 말하는 것이 옳을까? 보다 근원적인 대안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학자이기에 그저 일반적인 답변을 던진 것일까. 아니면 서구의 많은 언론들은 아직 그 밑바닥을 내보이지 않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안을 제시한 것일까. 생각해 보니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BBC 등 신뢰받는 언론이 존재하는 해외 매체에서 경언유착, 검언유착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과 관련하여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게만 느껴져 아쉬웠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71264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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