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축제 -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8020 이어령 명강
이어령 지음 / 사무사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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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가 보는 수의 세상은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까. 세상에 전해진 수의 세계는 명확과 효율에 가깝다. 태어나는 순간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다. 군대나 병원에서도 효율을 위해 번호를 사용한다. 숫자 속에서 사람들은 '진짜 자신'을 잃어버렸다 주장한다.

우리의 삶은 수에 지배받고, 우리는 숫자에 집착한다. 심지어 사람의 마음이나 애정 같은 부분까지 수의 세계로 환치하려 한다. '나를 얼마만큼 사랑해?'라는 질문은 답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질문이다. 우리는 이 불가능한 영역까지 수로 계산하려 하나 이들은 수가 아닌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삶이 수의 세계로 함몰될수록 수의 세계를 벗어난 것들은 더욱 귀중해진다. 사랑과 마음, 정의 등 우리는 측정할 수 없는 가치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한다. 대신 GNP, GDP, 서열, 학벌, 돈의 액수 등 숫자로 나열할 수 있는 것들에게서 가치를 찾는다.

자본주의 사회 아래에서 수에 대한 이야기는 비극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삶을 규정짓고 한계를 만드는 이 '수'에 함몰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오늘의 젊은 벗들에게 창조력과 상상력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다른 생각, 다른 삶'을 선택한 젊은이들이 창조력과 상상력을 이해한다면, "악마의 숫자든 뭐든 오너라. 인생이 숫자 아니면 이름으로 시작된다고? 어느 것이든 좋다. 숫자든 이름이든 인생의 운명이여 오라. 나는 나의 인생을 나의 창조적 상상력으로 행복하게 만들겠다. 숫자도 만들겠다. 숫자와 함께 수많은 아름다운 이름과 시 또한 발견하겠다" 고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에 의지하여 우리의 미래는 새로운 도전 앞에 머뭇거리지 않는 용기와 열정으로 활짝 열린 것입니다.

내용은 재밌었으나 어려웠고, 그 깊이를 알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특히나 결론 부분에선 삶을 구분 짓는 '수'의 세계가 아닌 '창조력과 상상력'의 세계로 나아가라 말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주입식 교육에 함몰된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벙찌게 될 것이다. 내가 읽은 것이 맞는지를 허무하게 되거나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생각의 축제' 소개 글에서처럼 홍을 ㅎㅎ(히읗히읗)이라 읽는 아이의 눈과 같은 삶. 이어령 작가는 그런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삶을 살아가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작가 역시 아이는 천재이거나 우주인일 수 있다 칭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흔하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저자 이어령의 수업방식이 그렇다. 답을 주는 방식이 아닌. 읽는 이에게, 수업을 듣는 이들에게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 당신이 고민하고 있다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자.

시대의 지성이라는 별칭답게 다양한 이야기와 견해를 '수'안에 녹여낸다. 심지어 춘향가를 수와 연결 짓기도 한다. 이런 과정들이 어쩌면 편견과 수에 사로잡힌 굳은 뇌에게 활력을 부여하는 과정일 수 있다. 다양한 시각을 가져오는 저자의 두뇌와 생각이 부럽기만 하다. 고인이 된 저자의 수업을 책으로 밖에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작가의 유작들과 기록물들이 다양한 책으로 출간되고 있다. 작가의 수업과 이야기를 더는 들을 수 없겠지만,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저자의 사상과 시각을 공유해 보는 것이 어떨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가는' 젊은 영혼들에게 저자가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는 우리를 생각의 축제 속으로 이끌 것이다.

생각의 축제 속 문장들

모든 것이 이렇게 숫자로 표현될수록 우리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사랑이나 마음이나 정의 같은 것의 귀중함을 더 깨닫게 됩니다.

숫자는 얼어붙은 빙하처럼 싸늘하게 고정되어 있다.

컴퓨터는 1과 0으로 모든 걸 기록할 수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문화이고 음양사상입니다. 디지털의 원(One)과 제로, 즉 피타고라스가 얘기하는 2개의 대립하는 짝으로 보면 세상이 확연해집니다. 유한과 무한, 단수와 복수, 기수와 우수, 우와 좌, 정과 동, 직선과 곡선 등등 이 세상이 복잡하게 많은 것 같아도 정리가 되어 질서정연한 하나의 우주를 생각할 수 있지요. 삼라만상 무한한 우주를 음과 양으로 나누면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둘이라는 숫자가 없었으면 부부, 남녀, 빛과 어둠 등을 의식할 수 없었겠죠. 우리 머리 자체가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는 겁니다.

분화하면서도 합쳐지는 세계 2 중에서

이 세상에서 언어라고 하는 것은 '정신' 그 자체다. 그런데 이게 쇠퇴하면 숫자들이 나와서 이 언어로 사색하는 개념을 전부 숫자화해서 이 세상은 완전히 숫자들이 판을 지배한다.

슈펭글러 서구의 몰락

숫자에서 벗어나 첫째라는 것. 제1인자 또는 유일자, 하나밖에 없는 것, 즉 'Only One.'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모든 숫자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생각의 근원이 되잖아요. 바로 'Only One'이라고 하는 그 점에서 기준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잖아요. 그러니 유일한 존재로 '절대'를 나타내는 1은 참으로 고독한 수입니다.

하나에서 둘이 나온다 1 중에서

릴케의 말처럼 우리가 숫자를 본 것은 단지 종이 위에서 밖에 없어요. 따라서 숫자에 매달리는 인생은 허무하기 마련이지요. 눈에 보이는 숫자를 넘어서 언어와 이름의 세계를 결합시켜야만 우리의 진정한 창조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파레토 법칙을 뒤집은 롱테일의 법칙 중에서

읽고 나서

'생각의 축제'는 제목 그대로 수와 관련된 다양한 생각들이 축제를 벌이는 책이다. 수의 탄생과 수의 역사와 수비학, 사회 안에서 수로 이름 지어진 것들과 이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들의 대비 그리고 과거 우리가 수에 대해 생각한 인식까지. 다양한 관념과 인식들이 대립과 비교를 통해 우리의 지향점을 찾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수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언어와 창조의 세계로 회귀를 권하는 책.

제목은 축제지만 사고의 틀을 바꾸라고 말하는 책은 혁명이다. 혁명군의 선봉장에 선 이어령 작가의 도발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수의 비극'이라는 그간의 관점을 뒤집는 선언과 '나를 얼마만큼 사랑해? 이 질문의 모순과 불가능""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낯설고 당황스러운 질문들이 끝도 없이 던져진다. 시대의 지성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생각의 축제'를 통해 수와 관련된 다양한 인문학적 관점을 접할 수 있다. 굳어 있는 감각들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생각하게 된다.

멋지다. 이 책은 정말이지 멋진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젊은이들에게 남긴 저자의 선물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710270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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