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산책'에서 나온 작가들의 글쓰기와 산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같이 낯설다. 이유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책에 나온 작가들 대부분을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인 케리 앤드류스는 읽는 독자들이 소개된 작가를 알 것이라는 전제하에 글을 쓰는듯하다. 자연스럽게 작가의 편지와 글 일부를 소개하고 작가의 삶을 얘기한다. 작가의 저작물을 스쳐가듯 소개가 되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에서도 이야기하지만, 한국 문단은 프랑스 문학의 영향을 받았기에 영미문학 작가들과 친하지 않다. 또한 여성작가들에겐 매우 인색하여 구글 검색 시에도 나오지 않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작가들은 남편이나 시인인 오빠에게 가려지기도 했다. 대화체 시로 유명한 시인인 도로시 워즈워스의 경우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의 오빠인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에 대해 소개된다. 낸 셰퍼드는 스코틀랜드의 작가이자 시인이지만 그녀의 저작물에 대한 소개보다. 2016년 5파운드 지폐 모델로 선정된 이야기만이 소개된다. 이 책에서 작가 소개 없이 알 수 있는 작가는 아나이스 닌과 버지니아 울프가 유일했다.
'자기만의 산책'에서 나온 여성들의 공통점이자 책을 읽는 키워드는 '지식인, 부유층, 그럼에도 제한적인 여성'들의 삶이다.
'자기만의 산책'에 나온 작가들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다른 여성들에 비해 나은 삶을 살고 있음에도 제한된 작가들의 삶. 그들은 자신의 여성성에 대해 평가받았어야 하며, 그들에게 걷는 일이란 위험을 감수한 모험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산책은 삶에 대한 저항이자 하나의 탈출구였다.
작가들은 계속해서 걸었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걷는 일이란 기묘하고 낯선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아나이스 닌은 자유롭고 싶어서,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서 걸었다. 엘리자베스 카터는 방랑자의 삶을 동경하며 걸었다. 그들에게 걷는 일이란 꿈이자 모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