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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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 가족, 오늘의 일상, 작은 것들 모두를 감사하게 한다. 어째서인지 이 책은 그런 생각들 보다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내가 죽는 순간 혼자면 어떡하지? 죽음의 순간 함께해 줄 사람이 나에게 있던가? 주인공보다, 죽음을 견디는 친구의 이야기에 더 공감을 하게 되는 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지난 시간만큼 숱한 이별을 견뎌왔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이별의 상처에 무뎌지지 않기 때문일까, 혼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죽음의 순간만은 혼자이고 싶지 않은 두려움 때문일까. 아마 모두이지 않을까.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어떻게 지내요? 얼핏 보면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 듯하지만, 원문으로 해석하면 '너의 고통은 어떠니?'라는 타인에게 묻긴 다소 불편한 질문을 담고 있다. 두려움과 고통. 이 두 가지를 떠올리고 제목을 보자니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삶이란 연속된 고통과 두려움을 견디는 것이 아닐까. 이 불쾌한 감정은 타인이 건드리기 힘든 영역이다. 예민한 부분을 서슴없이 묻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만큼 친하다는 의미겠지.

이 모든 일(이 모든 일: 가차 없는, 형언할 수 없는 그것)이 먼 과거의 기억이 됐을 때는 과연 어떨지 알고 싶다. 더없이 강렬한 경험이 결국엔 얼마나 자주 꿈과 비슷해지는지, 난 늘 그것이 싫었다. 과거를 보는 우리의 시야를 온통 지저분하게 뭉개놓는 그 초현실적 오염 말이다. 실제 일어난 그토록 많은 일이 어째서 진짜로 일어나지 않은 듯이 느껴지는 걸까? 인생은 한갓 꿈일 뿐. 생각해보라. 그보다 더 잔인한 관념이 과연 있을 수 있나?


삶은 친구의 죽음과 함께 다양한 인물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와 공존한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삶. 누군가는 내일 죽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강연을 하고, 연애를 하고, 운동을 한다. 처음에는 왜일 부산스럽지라고 생각했던 구성은 뒤로 갈수록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타인이 내일 죽을 것이라 해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죽는다 해도 우리는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은 어우러지고 내일을 향해가는 듯하다. 그래서 더욱 외롭게 느껴지고, 잔인하게 느껴지는 소설. 그렇기에 친구의 죽음에 함께하는 주인공의 여정은 어둠이 아니라 빛에 가깝다. 울음 섞인 친구의 말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애를 썼다.

사랑과 명예와 연민과 자부심과 공감과 희생-

실패한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삶의 마지막에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해석될까. 나는 알 수 없다. 이 이야기는 꽤 두렵기도 하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여정을 함꼐하는 것은 서로의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기록이다. 주인공은 일기를 친구는 하나의 서평을 남긴다. 그 대목을 되새기면서 임재범이 부르는 여러분이 생각난다.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줄까, 라고 묻는 이 노래의 1절에서는 네가 외로울 때는 내가 위로해준다고 말한다. 노랫 속 화자가 모두를 찾아갈 수 없으니 음악으로 남겼을 것이다. 음악으로 등불이 되어주고 벗이 되어준다 노래한다. 이 소설의 친구는 여정의 끝 아는 작가의 서평을 쓴다. 그리고 나는 친구의 마지막날까지 일기를 쓴다.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남길 수 있을까? 사르트르의 구토를 떠올리며 예술의 의미와 가치, 기록의 의미를 새기게 된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492953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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