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파도에 빠지다
아오바 유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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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감동에 무뎌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그것을 성장이라 말했지만, 포기나, 실패, 상처나 아픔에 무뎌진 게 아닐까, 그게 너무 당연해져서 공감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건 좋은 걸까. 의문이 많아졌지만, 질문을 삼킨다. 감정이 무뎌진 순간은 소설에서도 나온 위의 문장을 잃어버린 순간과 비슷했던 것 같다. 나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가능성을 한 수 접기 시작했다.

이건 성장한 걸까, 아니면 익숙해진 걸까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 이 책은 어른이 되면서 당연히 받아들이는 감정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 한 무명 아티스트의 곡을 통해 이상과 현실 그 간극을 설명하고 있다. 어른이 되면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에 '왜'라고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다면, 무뎌진 감정과 꿈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감정들을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 안내 데스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기와사키 하루카는 무기력증에 빠져있다. 4년째 지속된 연애도 일도 지쳐가고 하루하루 쌓이는 건 일상의 피로뿐이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무명 가수의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라는 노래를 듣고 음악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그 가수는 이미 일 년 전 사망했다.

소중한 건 반복해야 돼. 몇 번이든. 끝없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꺾이지 않도록,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잘 가 원더 중에서

잘 가 원더는 원곡 가수 기리노 줏타의 이야기다. 오미야 나쓰가는 올림픽 수영선수를 꿈꾸며 연습을 하던 중 전학생 기리노 줏타와 친해지게 된다. 음악과 수영이라는 꿈이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리듯 친해진다. 부모님의 전근으로 전학을 가게 된 나쓰가 두 사람은 바다에게 미래에 대해 약속을 한다. 그때 줏타가 불러준 노래가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였다. 두 사람은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음을 기약하고 이별한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누구나 무언가를 포기한다. 그걸 어른이 된다는 말로 포장하며 태연하게 살아간다. 그런 법이다. 그런 법이지만, 포기한 걸 자랑스러워하고 싶지 않다. 평생 동안 새로운 상처처럼 끌어안고 살고 싶다. 이걸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 아픔을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정말로 하찮은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태어나다 중에서

뮤지션 마사히로는 버스킹을 하는 줏타를 만나게 된다. 마음이 잘 맞았던 둘은 밴드를 구성하기로 한다. 함께 곡도 만들고 연주도 하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한다. 드럼을 치는 히로키는 새로운 직업을 찾아 떠나고, 마사히로 역시 음악을 포기하고 아즈사와 결혼한다. 결국 줏타만이 남아 객원 뮤지션들과 함께 음악을 계속한다.

꿈을 포기하는 순간에 대한 위의 문장은 너무나 잘 아는 감정이라 마음에 와닿았다.

역시 그렇다. 우리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나아가는 것에 더 이상 의미는 없다. 글을 쓰는 의미, 물속을 헤엄치는 의미, 기타를 치는 의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 그런 건 진즉에 잃어버렸다. 그래도 잃어버린 것들은 채워지지 않는 공백으로 각자의 몸 안에 존재한다. 지워지지 않는 가슴속 아픔이 우리를 계속 살게 한다.

극적인 카타르시스는 이제 없다. 그럼에도 어렴풋한 희망을 끌어안고, 오늘도 살아간다.

파안 중에서

프리랜서 기자 히카리는 오미야 나쓰카 수영선수를 인터뷰하게 된다. 그녀와의 인터뷰 중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라는 노래가 나쓰카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이고, 나쓰카의 첫사랑이 기리노 줏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기리노 줏타의 흔적을 찾던 중 줏타가 세이라와 결혼했음을 알게 된다.

위의 문장은 두 여자가 세이라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나눴던 대화를 통한 히카리의 독백이다. 나쓰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간다'라는 이 대사는 잘 가 원더에서 줏타와 나쓰카가 나눈 대화이기도 했다.

음악과 예술이 줄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음악에 영향을 받는다. 삶과 연애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거나, 현실로 인해 꿈을 포기하게 되거나, 꿈을 향해 가지만 매 순간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렸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던 무명 가수의 음악은 어떤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는 하나의 반환점이 되거나 그저 스쳐지나 가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예술과 우리의 삶, 꿈, 많은 것들이 일상 속에 공존한다. 마치 이 소설처럼. 마주했다, 흩어지고, 모였다가 각자의 길로 향한다. 소설 속 나쓰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삶에는 '나아간다'는 의미가 한 층 더 짙게 새겨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나 역시 나아간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문장이 훌륭하거나 기가막히게 잘 쓴 소설은 아니다. 이야기와 소재와 구성의 기발함과 공감이 이 책을 살리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삶이 숨이 막힐 때, 쉼표가 되어주고 주변을 환기 시킬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저자가 어려서 인지 그 시대에 이야기할 수 있는 '꿈'이란 소재, 그리고 꿈을 향해 달리는 이들의 모습과 고민이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387637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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