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 죽음의 미학,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이문열 엮음, 김석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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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 산책, 죽음의 미학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실려 이었고,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이 있었다. 각각 구매하기도 번거롭고 내가 좋아하는 이 책만 구매하고 싶은 못된 심보가 있었다. 그러던 중 두 작품이 함께 실린 선집이 있다니, 그것도 죽음이라는 이름 아래. 이 책을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책을 주문하고 받는 순간 악 소리가 절로 난다. 표지부터 너무 고급스럽다.

PU(인조가죽) 소재에 박으로 명암을 만들었다. 앤티크하고 고급스러운 책자. 톨스토이의 대표작 '이반 일리치의 죽음'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이미 소개했지만, 그 외에도 마르셀 프루스트와 헤르만 헤세, 잭 런던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건 맹장이나 신장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야. 그래 나는 떠나는 삶의 발목을 붙잡을 수가 없다. 그래, 나 자신을 속여봤자 무슨 소용이야.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잖아. 나만 빼고는 누구한테나 명백한 사실이야.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중에서

'죽음도 끝났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젠 죽음도 없는 거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명백한 죽음.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 이반 일리치라는 인간을 통해 정제된 언어로 톨스토이는 죽음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죽음. 이 죽음이 무엇보다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모두가 겪게 될 하나의 의례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지막의 죽음을 서술하는 담담한 문장. 담담한 죽음.

이반 일리치의 인생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너무나 끔찍했다.

타인의 생을 통해서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나의 삶, 나의 인생.

죽음은 또 하나의 성장,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끝

헤르만 헤세, 크눌프

"그래, 이제 더 탄식할 것이 없는가?" 신의 음성이 물었다.

"없습니다." 크눌프는 머리를 끄덕이며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양호한 거지? 제대로 잘 된 거지?"

"네, 모든 게 제대로 잘 되었습니다." 크눌프는 끄덕였다.

크눌프 중에서

기대했던 두 작품도 대단했지만, 내 마음을 찌른 한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이 작품이다. 이 책을 생의 전반을 다루고 있다. 방황하는 젊은 날과 종말을 이야기하는 마지막까지. 죽음을 앞두고 신과 크눌프가 나누는 대화는 구원의 어떠한 한 장면을 떠오르게 만든다. 신기하게도 그 제목은 '종말'이었는데 말이다. 이 종말 편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생은 항상 미숙하고 부족하기만 했다. 신은 그 안에 채워진 가치를 보라 말한다. 죽음의 종말이 기다리는 가운데 우리의 생은 왜 떠나고 또 떠나는가. 그리고 왜 우리 모두는 죽음이란 목적지로 향하는 것인가.

신이 없는 죽음, 가장 현실적인 죽음의 이야기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세상 전체를 합친 것만큼이나 드넓은, 그리고 거대하고 드높은,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만큼 하얗게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네모진 정상이었다. 순간 그는 자기가 향해 가고 있는 곳이 바로 저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킬리만자로의 눈 중에서

조용필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모델이 되는 작품. 그 도입의 가사가 어디서 나왔는지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킬리만자로의 눈 처음을 보면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높은 정상에서 얼어붙은 표범으로 시작해서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울부짖는 하이에나로 끝난다. 가수 조용필처럼 어느 것의 되고자 그 가치를 긍정하지 않는다. 심장이 뛰는 우리네의 삶은 어차피 하이에나의 삶을 닮아 있기에.

많은 이들이 헤밍웨이를 낭만적인 서사를 그리는 작가로 알고 있으나,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그는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작가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크눌프 두 작품 모두 죽음에 대한 낭만성을 가지고 있으나, 킬리만자로의 눈에는 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고통과 하지 못한 일들의 아쉬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했고, 많은 죽음을 본 작가는 죽음에 대해 무엇보다 현실적이다. 이 소설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소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킬리만자로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된다.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꿈과 이상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 킬리만자로가 그러한 이상향인 걸까. 그래서 표범은 죽더라도 고귀한 가치를 위해 킬리만자로 그 정상에서 얼어 죽었던 것일까. 알면서도 알 수 없는 부분은 직접 책에서 찾아보길 권한다.

여기에 실린 작품 중 작품 해설이 가장 멋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제목부터 '신이 없는 죽음과 감추지 않는 주저 흥'이라니 표현 보소.


절판된 도서를 다시 다듬고 다듬어 낸 재판,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 사이 고전들은 더욱 가치를 인정받아 공고해졌다. 재판이 되면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인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 빠졌다고 한다. 이해가 되면서도 아쉬운 일이다.

죽음은 비극이 아닌 미학이 될 수 있는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이 아닌 인간이 연출하는 가장 신성한 의식이 될 수 있은가. 나는 이 책에 실린 내용을 전부 받아들이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좋은 책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양상과 죽음의 받아들이는 태도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를 가진다. 고마운 일이다.

이문열 세계명작 산책은 총 10개의 주제로 그에 맞는 작품들을 실어서 기술하고 있다고 한다. 1편은 사랑, 2편은 죽음이었는데 사랑이란 주제가 그다지 와닿지 않아 보지 않았으나, 기회가 된다면 1편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145086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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