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전에 쓰는 글들 - 허수경 유고집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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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허수경 시인의 유고집이다. 유고집은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책이다. 이른 나이에,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의 생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제목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은 '가기 전에 쓰는 시들'에서 시에 사선을 긋고 '글'을 아래에 배치했다. 그래서 시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글마다 날짜가 명시되어 있다. 시작을 위한 메모였을 것이다. 그날의 풍경 묘사도 있고, 그날의 사유도 있다. 산문도 시같다. 바라보는 풍경도, 사유도 종국에 시와 맞닿아 있다. 그의 삶은 詩詩하다.

시인은 슬픔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허수경 시인은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글에는 '아프다'는 단어가 참 많다. 그 아픔은 육체적인 아픔보다 정신적인 아픔 쪽에 더 많이 기울어있다. 나의 아픔보다 타자의 아픔에 더 민감하다. 허수경 시인은 그 아픔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 속에서 공명한다. 그러니 시인의 육체가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수경 시인은 '시인은 탄생과 탄생을 거듭하다가 어느날 폭발해버리는 존재'라 규정한다. 탄생을 위한 몸부림, 종국에 폭발할 것을 알면서도 그 몸부림을 멈추지 못하는 이들이 시인이다. '시가 쓰여지는 순간은 참으로 우연하게' 와서 삶을 통과하는 모든 순간의 우연에도 촉수를 곤두세웠던 시인, 그 섬세함과 예민함이 허수경의 시이고, 허수경 자신이다.

시인으로 살면서 어떤 편에도 속하지 않고, 스스로를 고아로 자처하며, 고아인 시인들을 사랑하며, 시 아닌 것에는 아무런 미련도 관심도 없었던 시인. 부와 권력의 문화에 홀리기를 거부하는 시인, 인간의 결핍에, 세상의 아픔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시인 중의 시인. 이 가을 그런 시인이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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