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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I-II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평점 :
멜랑콜리아 Ⅰ-Ⅱ/욘 포세/ 손화수 옮김/민음사
파편화된 시간 속에 놓인 인간에 대한 연민
인간의 의식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시간이 일만 분의 일 초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인간은 이처럼 수없이 파편화된 의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삶에 대한 압박이 강할수록 내면의 존재하는 두려움, 공포는 시시각각 부피를 키우고 결국엔 존재 자체를 쓰러뜨리고 만다.
욘 포세의 소설 멜랑콜리아는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출신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삶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소설의 구성은 단순하다. 멜랑콜리아 Ⅰ의 첫 부분은 뒤셀도르프의 1853년 늦가을의 어느 날 오후에 시작되고, 두 번째 부분은 가우스타 정신병원의 1856년 크리스마스이브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인 욘 포세는 사건의 발단이 된 뒤셀도르프와 다우스타 정신병원 등,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를 제시하면서도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3년의 행적에 대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한 줄의 여백으로 그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는다. 또한 1991년 늦가을 저녁, 오사네:로 시작하는 1부의 끝부분에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그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한 작가 비드메의 등장 역시 한 줄 여백으로 처리한다.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노르웨이 화가 한스 구데가 교수로 재직한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의 학생이며, 남편과 사별한 헨리에테 빙켈만의 집에서 하숙을 하는데, 그녀의 딸 헬레네를 사랑하고 있다. 한스 구데를 만나기로 한 날,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그를 만나러 가지 못하고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차려입고 침대에 누워 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한스 구데에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에 압박감을 느끼고,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욘 포세는 수많은 문장의 반복을 통해 파편화된 라스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도 확신할 수 없고,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의 내면은 더욱 파편화된다. 상상과 현실, 사실과 가정, 진실과 거짓, 광기와 이성이 뒤섞여 혼란은 더욱 증폭된다. 자기 자만과 타인에 대한 경멸을 통해 자기 존재의 대한 확신을 가져보려 하지만, 자기 경멸과 타인의 조롱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으로 나아가는 데는 번번이 실패한다.
라스는 자기 속에 갇혀버린 존재다. 라스를 가둔 것은 내면의 두려움과 공포다.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은 그의 욕망은, 그 욕망의 크기만큼 좌절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내면에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면의 두려움과 공포는 현실의 욕망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고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광기를 드러낸다.
멜랑콜리아 Ⅱ는 라스의 누나 올리네가 화자로 등장한다. 그녀는 라스를 떠나보냈고, 그녀 역시 귀도 잘 안 들리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졌으며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의 일뿐이다. 또한 근처에 사는 또 다른 남동생 쉬버트마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버티고 있다. 그녀의 기억을 통해 라스와 그녀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지만,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기억에 그쳐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는 없다. 그녀는 노쇠한 몸으로 현재를 살고 있지만, 기억은 끊임없이 과거를 향하고 있다. 그녀는 현재 원초적인 본능(먹고 배설하는 것)의 해결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생의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그것이 과거의 기억인지 현실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작가인 욘 포세는 라스 헤르테르비그와 그의 누나 올리네를 통해 파편화된 의식에 함몰된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정과 긍정, 확신과 불확실성이 혼재된 수많은 문장의 반복은 그들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 광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한 문단에 몇 페이지를 할애하며, 내면 의식이 촘촘하고 빼곡하게 인간을 옭아매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안과 공포, 두려움은 인간 내면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것은 욕망의 크기와 비례한다. 욕망할수록,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것에 대한 불안과, 욕망하는 바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팽팽하게 긴장관계를 이루며 내면을 잠식해 나갈 것이다. 피폐해진 정신에 이성이 잠식당하면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린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라스가 살고 있다. 라스는 누구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잘 그려 성공한 화가가 되어 노르웨이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자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후원해 준 한스 가브리엘 부크홀트 순트의 호의에 보답하는 길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 욕망의 크기에 한스는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작가 욘 포세는 그런 한스를 통해 인간 내면의 보편적인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파편화된 의식에 함몰되어 버린 개인에 대한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알아차림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욕망의 좌절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 욕망의 크기를 조절할 수 아는 것 그것이 결국 살아내는 힘일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지나친 욕망을 포기할 줄 알아야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의식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시간은 일만 분의 일 초라 한다. 집착하고 붙들면 그 속에 갇히게 된다. 파편화된 의식들이 흐르게 그냥 두는 것, 알아차리는 것 그래서 자신을 지키는 것, 우리 모두의 숙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