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
김병로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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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분단이라는 아픈 현실 앞에 더욱 애틋한 리정혁과 윤세리의 사랑에 전국민이 몰입했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자연스레 접하고 북한 사투리를 따라해 보기도 하면서 호기심과 친근감을 느끼는 시청자도 있었을 것이다. 또 요즘은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북한 사회의 부조리와 개인적인 비극은 물론, 예능이나 유튜브에서도 그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자주 보고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이해는 손쉬운 일반화를 가능하게 할지는 몰라도 결국 표면적이고 불완전할 뿐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을 자본주의의 폐단으로 피폐해져 있으며 미국 없인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체제로 믿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북한에 대한 나름의 견고한 오해와 선입견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은 이럴 것이다’라고 이미 규정해 두고, 그 곳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의 근원과 그 변화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쪽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에게 아직은 멀고도 어려운 나라인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줄 책인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를 접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자 교수를 역임하며 북한 연구를 30년 이상 해온 저자는 ‘편견이 덧씌워진 북한’이 아닌 실제 그대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조선’이라는 정체성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안내하는 대로 북한을 다시 독해했을 때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놀랍고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우리가 우리 나라를 ‘남한’, 북한을 ‘북한’이라고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남’과 ‘북’의 입장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남조선으로 불리는 것을 달갑지 않아하는 것처럼 북한 역시 ‘한국의 북쪽인 국가’로 불리는 것을 거북해 하는 것이다. 

그들이 국제사회에서 명확히 내세우고 굳게 믿는 정체성과 이념은 ‘조선’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그들의 정치, 경제, 문화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그 정체성을 염두에 두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일례로 북한은 아직까지도 전통적인 농촌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품앗이와 집단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날이 갈 수록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남한과는 대조적인 특성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 중 하나인 유교사상을 여전히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이념을 공고히 하고, 조선의 쇄국주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점에서 조선이라는 정체성에도 공감하게 된다. 

따라서 일반적인 서구적 모델이 아닌 정치, 경제, 사회문화, 군사 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을 때 더 정확한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며 각 영역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북한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로 깊은 상처를 받아 오늘 날까지 ‘자폐적인 성향’을 유지한 채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도 경직된 ‘전시체제’가 가동 중인데, 이런 체제 아래서는 우리가 기대하는 합리적이거나 균형 잡힌 정치와 리더십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근거 없는 선입견이나 섣부른 일반화 대신 북한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과 평가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오늘 날 북한의 현실을 국가발전 및 근대화의 시점에서 바라본다. 무엇보다도 조선의 역사와 정체성을 중심으로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가 전체적으로 어떤 조화를 이루며 발전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한 시도는 우리나라와 북한을 비교함으로써 차이는 물론 통일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공통 지점들을 찾아낸 것이었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과 정당성에 대한 분석에 이어서, ‘조선’의 고립된 체제가 앞으로 경제적인 어려움과 국제사회의 제재, 비핵화 및 인권 문제에 대한 압박 등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정치와 경제가 어떤 양상으로 변화해 나갈지도 예측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북한에 대한 매우 훌륭한 안내서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늘 우리의 기대와 분석을 보기 좋게 빗나가고, 가까워진 듯 하다가도 일순간 멀어지는 예측불가능하고 두려운 존재로 공존해왔다. 

국제적인 모럴이 전혀 통하지 않는 비이성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라는 인식 역시 지배적이다. 특히 어떤 접근방식과 분석틀로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우리 국민들에게 좌절감과 적대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우리 민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감싸 주기에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은 북한… 

그런 북한을 풍부한 자료와 조사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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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 융합시대의 과학문화
홍성욱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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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과학이나 수학과는 늘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요즘의 과학은 인간과 인간의 소망을 닮은 듯 하면서도 점점 더 비인간적이고 차가운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복잡하고 미묘해서 더 가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데이터로 손쉽게 환원되는 것을 보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가져올 앞으로의 미래에도 내가 쓸모 있을지 남몰래 걱정해본 적이 있다. 또 인간을 가장 고귀한 존재라고 믿게 해주었던 의식에 대한 뇌 과학자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허탈하고 쓸쓸한 기분도 들었었다. 새로운 발견과 기술의 도약에 대한 소식은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데, 나는 아무리 읽어봐도 도무지 뭐가 뭔지 제대로 알아 듣는 것조차 벅찰 만큼 오늘 날의 나에게 과학은 낯선 얼굴과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에 의해 세상이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바뀐다는 맥락은 그럭저럭 간신히 이해하며 평소처럼 지내는데, 동생이 신입생 때 받아와 책장에 꽂아둔 듯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2009년 대한민국 학술원 선정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데다가, 그새 엄청나게 바뀐 오늘의 과학 문화를 반영하기 위해선 2017년에 다시 개정판으로 출간된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낯설게만 느껴졌던 과학의 얼굴이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졌음은 물론, 문화로서의 과학이 그동안 우리의 역사와 사회, 여러 학문 및 예술과 어떻게 함께 어우러져 왔는지를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과학과 인문학, 예술, 건축, 언어, 젠더, 법, 인권, 과학박물관의 상호작용과 교류, 융합의 과정과 역사를 풍부하게 다루고 있다. 내 생각에 과학과는 가장 연관성이 적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예술과 언어 영역에서도 과학과 매우 유사하거나 공통된 지점이 많았다. 

저자는 제 2장 <과학과 예술>에서 과학적 상상력과 창의성,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과 창의성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밀접하게 교류, 융합해 왔으며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고 밝힌다. 예술가가 자신의 경계를 넘고 다양한 시도를 하듯이 과학자들도 단순한 논리적 추론이나 실증에만 국한되지 않은 과학적 상상력과 직관이 필요하다. 미술작품에서처럼 과학실험과 이론을 통해서도 아름다움과 미적인 요소를 찾아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제 4장 <과학과 언어>에서는 언어 역시 그동안 비과학적이고 모호하다는 이유를 들어 수학이나 논리보다 부정확한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사실 과학적 발견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실체를 부여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은 나머지 장에서도 과학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의 문화, 문학, 예술, 법,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융합하며 존재해 나갈 것이라 단언한다. 따라서 과학을 하나의 중요한 문화 체계로 인식하고 다른 문화와 상호작용해 온 과정을 돌아봄으로써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일깨워 주고 있다. 그동안 과학이 거쳐온 다채로운 상호작용과 접점을 이해하고, 문화로서의 과학을 바로 보도록 새로운 통찰을 주는 책이었다. 

덧붙여 저자가 책에서 강조했듯이 과학이 낯설게 느껴지는 만큼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갈 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 혹은 과학자들이 인간의 예술과 법, 정치, 인권과 같은 분야에 가치 판단을 내려줄 수는 없기에 나처럼 비전문가인 시민들 역시 과학 문화에 익숙해지고, 어려워도 늘 관심을 가지고 배워야 한다. 어렵고 복잡한 것을 최대한 알기 쉽게, 그리고 왜곡 없이 새로운 기술과 발전이 인류의 문화와 사회, 정신에 가져올 중대한 변화와 의의를 전달하려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과학이 예술, 문화,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현장을 포착한 이런 유익한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되고,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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