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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역사 설화 - 모든 순간에 하느님의 손길
안소근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0년 7월
평점 :
구약의 역사 설화의 지은이 안소근 수녀님은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의 수녀로서,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고(성서학 박사)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 신학원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 책인 구약의 역사 설화는 구약 성경내의 책들인,
룻기,토빗기,유딧기,에스테르기의 주인공들을 통해 옛날 그들의 삶 안에서 작용했던 하느님의 섭리가 현재 우리의 삶 안에서도
작용한다는 이야기를 믿게 해줍니다. 즉 믿음이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우연이고, 어쩌면 운명 이지만 믿음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 안에서는 하느님의 계획과 매 순간에 우리를 위하는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먼저 수녀님은 이 작은 네개의 구약성경안의 이야기의 역사와 시대적 사실을 집고 넘어가며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 주인공들의 삶이 그 시대 저자와 독자의 삶에, 또 우리의 삶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 즉 설화안의
하느님의 현존에 귀를 기우리라 하십니다.
룻기는 낯선 모압 여자인 룻, 그러나 후대에 이스라엘 족보에서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인 오벳을 낳은 여자로
인정 받게 되는 룻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룻과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그리고 룻을 기꺼이 아내로 맞이해준 보아즈의 이야기를 통해 룻기는 나와 다른이들의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돌보시는 방법이며 하느님의 계획이라 하십니다.
토빗기에서 디아스포라 였던 토빗은 하나님과 율법을 독실히 믿고 따랏으며 정의를 행하였고 자선을 특히 중요시 여기는 의로운 사람이업습니다.
그러한 토빗에게 약속한 축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토빗은 급기야 눈이 멀고 그의 아내는 그의 신앙을 반박합니다.
즉, 하느님의 섭리는, 선에 대한 갚음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겨납니다.
토빗은 이에 기도합니다. 어려울 때에 기도하고 그 어려움에서 벗어났을 때에도 다시 기도하는게 토빗기의 기본구도입니다.
토빗의 유언에 길을 떠나는 토비야에게 라파엘 천사가 나타나 도움을주고 길잡이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토비야는 악의 방해를 받던 사라를 라파엘천사의 도움으로 아내로 맞이하고 역시 천사의 도움으로 토빗의 눈도
낫게 됩니다. 이러한 토빗기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저자는 마치 토비야가 위험을 무릅스고 사라와 결혼을 했듯이,토비야의 장인 라구엘 사위 토비야에게 했듯이,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늘 하시는 약속인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것을 즉,"영원히 네 곂에 "있겠다고 말하는 가족의 무조건적 사랑처럼
하느님의 무조건적이고 자애로우신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유딧기는 하느님을 진실히 믿었으며, 아름답고 남겨진 재산으로 돈이 많던 과부이던 유딧이 네부카드네자르 명을 받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고 전쟁에서 승리로 이끈 이야기 입니다.
줄거리로만 보면 그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인 네부차드네자르의 교만을 보았고, 그와 반대되는 유딧의 하느임에 대한 순종, 하느님의 도구로서의 유딧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교만에 맞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요? 더 대단한 인물이 나타나서 그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엇일까요?하느님은 자신들이 마치 하느님인양 착각속에 사는 인물들에게 그들이 인간일 뿐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유딧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습니다.
즉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께 자신의 약함을 없애 주시기를 청하였지만 "나의 함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신 예수님의 대답처럼 맙입니다.
저자는 유딧기가 나오는 3장의 끝에 성무일도서에서의 1주간 월요일 아침기도의 마침기도를 생각합니다.(아래)
"주여, 간구하오니, 우리가 힐 일을 알려 주시고 그일을 행할 힘을 주시어, 우리 모든 일을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하고 시작한 것을 당신으로 말미암아 끝마치게 하소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에스테르기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에스테르기는 히브리어 와 그리스어 에스테르기의 내용이 다르고 또 그리스어본도 하나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차이는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하느님의 존재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부재가 룻기보다 훨씬 더 철저하며 등장하는 인물도 설화체에서도 하느님이 언급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에스테르기가 본래 종교적인 책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룻기나 유딧기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며,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보일때, 하느님의 역할이 무엇인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합니다.
에스테르기에서는 에스테르가 여왕이 된것처럼 하느님께서 실행하시려고 결정하신 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것은 인간의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이렇게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화답할때에 이루어집니다.
저자는 믿음이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면 모든것이 우연이고 어쩌면 운명일 것을 믿음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 안에서의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 안에서 작용했던 하느님의 섭리가 우리 삶안에서 작용한다는 것을 믿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