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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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다룬 문학적 성취로 평가받지만, 역사학적·정치적 관점에 따라 이념적 편향성과 서사적 한계에 대한 비판적 논의 역시 존재한다.  

문학이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자의적인 해석으로 대중을 호도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이 책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에 해당한다. 


1. 역사적 사건의 복합성 무시 


•    다층적 배경의 사장: 1980년 5월의 상황은 냉전 체제 하의 안보 위기, 군부 세력의 권력 장악 음모, 지역적 갈등, 그리고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었다.

•    서사의 단순화: 소설은 이러한 거시적이고 입체적인 정치·사회적 맥락을 과감히 생략한다. 사건의 인과관계보다는 비극적 순간의 참상과 고통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역사의 입체적 이해를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2. 이분법적 가해·피해 구도


•    선악의 극단적 대립: 소설은 국가 권력과 계엄군을 절대적인 '악(가해자)'으로, 광주 시민과 주인공들을 무결한 '선(피해자)'으로 설정하는 선명한 이분법적 구도를 취하고 있다. 

•    인간성의 입체성 상실: 명령 체계 하에서 통제되었던 개별 군인들의 심리적 갈등이나 사태의 확산을 막으려 했던 중재자들의 노력 등은 배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역사적 인물들이 평면적인 도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3. 역사적 사실의 선택적 편집과 과장


•    감정적 충격을 위한 선택: 문학적 허구와 예술적 표현이라는 미명 하에, 작가는 참혹한 폭력의 묘사와 고문의 잔혹성을 극대화하는 서사를 선택적으로 배치하였다. 

•    객관적 거리두기 실패: 사건의 전체적인 전개 과정이나 다양한 진술 중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비극적인 요소들을 부각함으로써, 독자가 사건을 객관적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감정적 충격에 압도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4. 역사적 원한 감정의 확대재생산


•    트라우마의 현재화: 소설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로 나아가기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고통과 원한(怨恨)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    갈등의 영속화: 이러한 서사 구조는 독자에게 과거 사건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고스란히 전이시키며, 세대 간 또는 지역 간의 역사적 앙금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원한 감정을 현재진행형으로 확대재생산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5. 대중에 대한 잘못된 역사 인식 호도


•    허구의 사실화: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가상의 인물과 내면 묘사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 대중이나 젊은 세대에게는 소설 속 내용이 곧 '유일한 역사적 진실'로 오인될 수 있다. 

•    왜곡된 인식 심화: 예술적 감동이 이성적 검증을 압도하면서, 사건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나 학술적 탐구 대신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역사 인식을 고착화할 위험이 존재한다. 


6. 문학의 대중 선동 도구화


•    이데올로기적 도구: 특정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내러티브를 강화하기 위해 인간의 숭고한 희생과 비극을 문학의 소재로 소비했다는 비판이 있다.

•    감성적 프로파간다: 독자의 도덕적 공분과 감수성을 자극하여 특정 방향의 정치적 올바름이나 역사관을 수용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순수 문학의 영역을 넘어 대중을 특정한 이념적 방향으로 이끄는 선동적 도구로 기능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대체로 한강의 소설들은 국가폭력의 비극성을 고발하는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거시적 역사 인식의 결여와 특정 이념의 과잉, 그리고 감정적 원한의 확대 가능성 측면에서 신중한 독해와 비판적 접근이 요구되는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 


문학이 역사를 이야기 하는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역사를 작가의 임의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여과없이 심어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심각히 재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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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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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었던 저자가 아들과의 대화 형식을 빌려 세계 기아 문제의 실태와 구조적 원인을 피력한 것이다. 


저자는 기아 문제를 자연재해가 아닌 '구조적 모순'으로 규정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강렬한 메시지 이면에 담긴 지나친 이념적 편향성과 서술 방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주요한 서술적 및 논리적 한계를 열거하면 이런 것들이다.


1. 지나친 구조론적 접근과 책임 회피 (도덕적 이분법)

모든 기아의 원인을 오로지 '서구 선진국', '다국적 기업'의 탓으로만 돌리는 경향이 짙다. 이는 현지 국가의 정치적 무능, 종족 갈등, 부패 등 내부적 요인을 간과하게 만든다.

빈곤국 내부의 구조적 문제(독재, 내전 등)를 배제한 채 외부 세력만 비난하는 것은 기아 문제의 복잡성을 단순 이분법으로 재단하여 올바른 해결책을 찾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2. 과도한 감성적 서술과 논리적 근거 부족 

대화체 형식으로 읽기는 쉽지만, 구체적인 통계 데이터나 객관적인 연구 결과보다는 저자의 경험담이나 감정적인 묘사(예: "살인적 세계질서", "탐욕")가 주를 이룬다.

논쟁적인 사안을 다루면서 학술적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어,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3. 근본적 대안의 현실성 결여

구조 개혁, 자본주의 체제 변혁 등 거대 담론 위주의 대안을 제시하나, 당장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처방은 부족하다.

뜬구름 잡듯, 이상적 목표에만 집중하여 실질적인 기아 완화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류의 책이 대개 그러하듯, 현실적 문제를 선과 악의 단순 이분법으로 처방한 뒤, 해결방안으로서는 악한 세력들에게는 제재를, 선한 세력들에는 자각(혹은 혁명적 결단)을 요구하는 용두사미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역사적으로 그 실패가 증명된 마르크스식 분노 유발과 적개심에 기대는 처방전. 
이 책은 그러한 돌팔이 처방을 남발하는 돌팔이 의사의 또 하나의 부실한 저작으로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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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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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도가 실재라고 하는 믿을 만한 증거는 있지만, 그것은 함도 없고(無爲) 형체도 없다(無形).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가 없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가 없다. 스스로를 근본으로 하고 스스로를 뿌리로 하고 있다(自本自根). 하늘과 땅이 있기 이전부터 본래 있었다. 


귀신과 하늘님을 신령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내었다. 태극보다 높으나 높다 하지 않고, 육극(六極)보다 낮으나 깊다 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었으나 오래되었다 하지 않고, 옛날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늙었다 하지 않는다.


도는 taught 될 수 없고 오직 caught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글을 읽되 거기에 매이지 말고 읽어라. 그것을 오래오래 구송하고, 맑은 눈으로 그 뜻을 잘 살핀 다음, 그 속에서 속삭이는 미세한 소리마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바로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그대로 실천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감격을 노래하라. 그리하면 그윽한 경지, 조용하고 텅 빈 경지를 체험한 다음 시원의 도와 하나되는 경지에 이르리라. 


장자에서는 인간이 행한 행위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는 인과응보라든가 업보 같은 사상이 없다. 모두 자연이 그 순리에 따라 적절한 길로 만물을 변화시킬 따름이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 대신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네티 네티(neti-neti)라는 부정(否定)의 언어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두고 서양에서는 ‘부정의 길(via negative)’ 혹은 ‘부정의 신학(negative theology)’이라 했고, 희랍 정교에서는 ‘아포파시스(apophasis, apophatic theology)’라고 하였다. 


궁극 실재에 대한 우리의 모든 개념이나 생각을 버릴 때, 오직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참다운 실재(實在)로 파악하게 되고 이런 직접적인 체험으로 얻은 앎이 진정한 앎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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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법칙
김성규 / 큰산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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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교수이자 신실한 불자인 저자가 불교의 진리성을 과학적 측면에서 나름의 인생 경험으로 논증해 보이는 책이다. 

오늘날 과학의 첨단 물리 이론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은 심층의 차원에서 불교적 교리인 연기법과 인과법에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 있다. 궁극의 진리는 물질과 의식 모든 차원에서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상대론’은 ‘연기론’의 부분집합이다. 

절대성은 상대성의 부분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과학적인 문제나 불교적인 문제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존재 본질에 대한 문제이다. 


윤회의 법칙은 보편적 인간이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법칙은 아니다. 

다만 윤회의 법칙을 믿으면서 인생을 살아갈 경우에, 인생의 의미가 보다 풍부해지고 도덕적이고 건전한 사회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윤회의 법칙이란 가치와 신념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네 현상적 삶에서 절대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연기법과 인과법의 대원칙을 감안해보면, 윤회라는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음이 확실하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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