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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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매일 그의 얼굴을
조금씩 구겨놓고 지나간다
이렇게 매일 구겨지다보면
언젠가는 죽음의 밑을 잘 닦을 수 있게 되겠지

크리넥스 티슈처럼,기막히게 부드러워져서

시간이 매일 그의 눈가에
주름살을 부비트랩처럼 깔아놓고 지나간다
거기 걸려 넘어지면

끔찍하여라,노을지는 어떤 초저녁에는

지평선에 머무른 황금 전봇대의 생을
멀리 질투하기도 하였는데

-한때 황금 전봇대의 생을 질투하였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태양과 낮달,구름 그리고 안개를 다 보지 못하고
그가 풀어놓은 삶과 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슬픔과 가능성은 그대로 남겨져있다

부분 부분으로 남은 이해는 아래와 같다

전날 벗어놓은 바지를 바라보듯 생에 대하여 미련이 없다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마주 보고 있는 불빛들은 어떤 악의도 서로 품지 않는다(풍경)
이쪽에서 체념으로 눌리면 저쪽에선 그만큼 꿈으로 부푼다(풍경)
인생의 세목들이 평화롭고 단순했으면 좋겠다(장 보러 가는 길)
내 육체 속에서는 무언가 가끔씩 덜그럭거리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명상)
등뒤의 어둠과 눈앞의 환함이 서로를 환대할 때까지(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다들 사소해서 다들 무고하다(종교에 관하여)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머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청춘)
봄이면 느리게 바지춤 추켜올리는 나목(금빛 소매의 노래)
그림자를 보면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었다(성장기)
생은 균형을 찾을 때까지 족히 수십번은 흔들린다(대물림)
각자 잘 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버지 , 옛집을 생각하며)
씨발놈아, 미영인 내꺼다••••••참 부드러운 증오다(도주로)
지금 이 순간 창밖에서 /행복은 철지난 플래카드처럼 /사소하게 나부끼고 있습니다(편지)
이 밤에 열에 하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열에 하나는/ 무척 외로워 질 수 있다,그리고 열에 하나는 흐느껴 울기도 한다(확률적인,너무나 확률적인)
가장 먼저 등 돌리데/가장 그리운 것들~~~
가장 먼저 사라지데/가장 사랑하던 것들~~~(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는 아이러니의 세계나 현실의 세계를 분명 한 단면 단면으로라도 비춰지게 구성하였을 테고 그리하여 슬픔과 행복부터 과거와 미래로 구성하여 존재와 소멸에 대해서 말하였을 것인데 부족함으로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가 알아주길 바란다
그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을
같은 입장의 편에 서서 들여다보고 읽고 받아들여도 같은 사람이 아니므로
이 정도라는 것을 그도 충분히이해하리라

세상과
청춘을 지나는 일기를 읽었다
있는 건 너무 많고 없을 건 또 너무 없는
일과 일 사이에
마음을 주고 받는다는 일이 이루어졌다는 정도로 전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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