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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평점 :
룰루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 그녀의 책안에서 언급되었던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붙이기>라는 책을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이렇게 볼 수있게 되어 기쁘다.
캐럴 계숙 윤! 저자가 궁금하여 살펴보니 예일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후 코넬대학교에서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이자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움벨트란 곧. 컴퓨터에 내장된 메모리 칩처럼 태어날때부터 인간에 내장된, 본능적으로 인간이 자각하는 세계는 아닐까?
인간의 움벨트에는 중요한 의미 하나가 들어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생물의 체계적 질서를 감지하는 방식, 처음부터 내장돼 있으며 판에 박힌 그 방식을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이 바로 움벨트(우리가 공통적으로 지각하는 세계)라는 깨달음이었다. 36p
움벨트는 철저하게 감각적이며 극도로 주관적이다(…)
어류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과학이 움벨트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최종적으로 폐기하는 행위였다. (..)
분기학자들의 손에 어류가 죽어나간 그 일은 분류학이 진정으로 현대적인 과학으로서 태어나는 순간으로 기록됐다. 39p
과학자들은 분명 대단하지만. 인간을 둘러싼 모든 생명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적 오류가 분명 존재하지만 움벨트가 즉, 인간의 본능적인 지각 같은것들이 자연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나는 내 물고기들을 되찾고 싶다. (…)비록 과학을 대단히 존경하는 사람이기는 해도 물고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해야겠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이야기에 시동을 건 인물에서 시작한다. 바로 과학적 분류의 아버지가 된 카롤루스 린나이우스다. 45p
1부 자연의 질서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다.
사람들은 생명의 세계에 경이로운 볼거리가 아주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 세계는 아직 너무 많은 것이 미지의 것으로, 때로는 심지어 환상적인 것으로 남아 있었다. 63p
최종 결정자는 주관적 감각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은 14페이지분량의 그의 소책자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바로 자기중심적 세계인 움벨트와 함께한 <자연의 세계>는 자연의 질서를 오롯이 담아서 체계적으로 보여주었고 분류학이 탄생하게 된 이유이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분류작업들은 특정 과학자의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서 우리를 둘러싼 우리의 자연을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생명에 사로잡히고 매혹될 수 있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이론, 적자생존.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다한 핵심적 증거가 될 작디 작은 따개비들은 다윈의 세계로 구멍을 내고 비집고 들어와서 기존의 분류체계를 뒤엎을 매개체가 되었다.
“생명에 대한 진화의 관점에서 변이는 실제일뿐 아니라, 본질적이고 결정적이며 정확히 핵심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여기에 다윈의 진화적 변화의 시초가 있었고, 그것은 끝없는 변이라는 형태로 어디에나 존재했다. 자연선택 이론을 위한 어마어마한 승리였다”
111p
분류학에서 계통학으로…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일을 하며 항상 의존했던 것, 바로 움벨트가 주는 선물들에 의존했다. 마음 깊이 느껴지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그 감각, 시각,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곳들 사이의 무의식적 인식말이다. 137p
시간의 흐름과 함께하는 생명을 다루는 세계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진화 분류학이 더이상 나아갈 수 없었던 이유는 생명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더디게 혹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시간의 흐름과 공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2부 밝혀진 비전
나는 인류학의 세계에 뛰어들어 보고서야 이 강력하고 보편적인 생명의 비전이 또렷하게 그려진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움벨트가 지닌 진짜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이한 심리학의 세계로 풍덩 뛰어들어야만 할 터였다. 그 세계에서 자신의 움벨트를 완전히 도둑맞은 희한한 사람들에 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움벨트를 잃어버림으로써 정말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210p
움벨트가 컴퓨터에 내장된 메모리 칩처럼 인간에 내장된, 본능적으로 지각하는 세계라면 메모리칩을 뺀다면 어떤일이 발생할까? 책에서 언급된 뇌손상이후 회복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실로 놀랍다. 회복된 환자들은 무생물은 알아보지만 생명이 있는 생물들은 알아볼 수 없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신의 자리를 안다는 것, 주변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것은 움벨트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이들의 단순한 행동을 관찰하면서도 여실히 발견할 수 있었는데 학습 이전에 본능으로 인식하고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이 모든 행위가 움벨트안에 있었다.
3부 어떤 과학의 탄생
그동안의 직감을 이용한 분류방식은 틀렸다. 더이상 움벨트가 필요하지 않다! 스니스와 소칼이라는 수리분류학자들의 그러한 믿음 덕분에 통계분석이 등장했다. 수리분류학은 이렇게 태어났다.
린나이우스가 생명에 대해,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해 갖고 있던 풍성하고 감각적인 관점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실험복을 입은 저 남자가 석양에 지저귀는 종달새 소리에 환희를 느낄리 없고,,,(…)이 남자의 관심은 오직 안전유리를 통해 들여다보이는 완벽한 대칭으로 배열한 쥐들에게만 쏠려 있다. 더이상 생명이 있는 것들에 대한 몰두도, 감각의 향연도 아니었다. 289p
이부분을 아이에게 이야기해줬더니 좀 낭만이 없다고 한다.
<종의 기원>의 기원이 되었던 비글호를 타고 머나먼 여행을 떠났던 찰스다윈의 과학적 탐구와 지적인 열정이 지금 시대에도 가능할까? 지금의 경쟁사회라면, 또한 스마트 혁명으로 가득한 세상이라면 갈라파고스 군도에 사는 핀치와 다윈이 8년동안 연구한 따개비를 영원히 못만났을 수도 있을듯 하다.
수리분류학의 통찰과 정확성은 인정하지만 형질들에서 그 수치를 담아내기 위한 주관적인 지각과 핀단은 꼭 필요한 작업이다. 바로 움벨트가 필요한 작업이다.
더나아가 화학의 등장
분류학은 처음부터 항상 외양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분자 생물학자들의 성공으로 과학자들은 사실상 분류학자들에게 생물의 외양은 무시해도 되며 오히려 무시하는게 좋겠다고,
이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단백질과 DNA뿐이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할 테고, 시험관에게 바통을 넘겨줘야 할 터였다. 313p
생명의 질서에 담긴 진실을 캐내기 위해서 그 어떤 동물도, 식물도, 헤엄치거나 숨쉬거나 날아다니는 그 어떤 존재도 (…)생명의 세계에무엇도 알 필요가 없다는 것. 분자들, DNA만 알면 된다는 것…. 이다. 330p
전통분류학과 반해서 결과물을 도출해가는 삭막한 분자 분류학의 실험과정들에서 느끼는 저자의 괴리감이 글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물고기의 죽음.
분기학의 원리는 오직 공통의 새로움만을 사용하고, 인위적인 분류균은 결코 인정하지 않으며, 모호함은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과거의 생물학자들이 그토록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구식의 분류방식을 다 버린다는 의미다.이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가?
과학계가 모든 생명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함으로써, 스스로 생명 세계에 정당한 수호자, 소유주, 분류자, 명명자라고 선언함으로써 현재과학이 나머지 인류 모두가 생명 세계에 무관심해진 현재 상황을 초래하는 데 일조했을 수도 있다는 건 나로서는 전혀 짐작도 못 한 일이었다. 369p
4부 되찾은 비전
생명에 대한 더 깊은 과학적 지식은 생명 세계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과학과 상식을 조화시켜야 한다. 다윈은 <종의기원>에서 우리가 생명의 진화적 분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 과학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서로 일치하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375p
그들은 분명 거기 존재한다!
한결같이 어서 생명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의 굶주린 움벨트의 허기를 채워주고 싶어하는 작은 사람이 새로 한 명씩 태어날 때마다 우리에게는 또 한번의 기회가, 생물에 대해 열렬히 배우고자 하는 또 한명의 존재가 생겨난다. (…)
죽어가는 세계와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그 세계에 대한 우리의 비전에 작은 생명을 다시 불어넣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물고기부터 시작할 수 있다. 393~403p
마무리하며
물고기는 없다. 그럼에도..
저자의 호소와 격려가 희망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움벨트를 되찾아야 한다는.. 아니 되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은 충분한듯 보인다.
지금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이 순간에도 나무위 새들은 날갯짓을 하며 노래를 부르며 한껏 뽐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직접 눈으로 탐구하고 깊게 들여다 봐야지만 알 수 있는 경이로운 세계였다면, 슬프게도 지금은 실험실안의 각종 과학적 첨단기계로 손쉽게 원하는 정보. 유전자 정보, 생물의 진화쯤은 쉽게 분석할 수 있다.
놀랄만한 세계의 자연을 바라보는 관심과 애정이 넘쳐날 수 있었던 예전의 시대가 오히려 축복받았던 세계는 아니었을까.. 그래서 찰스다윈도, 카롤루스 린나이우스 에게도 자연은 그토록 탐구할 대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의 힘은 강력하다. 하지만 생명의 분류는 실험실만의 결과가 전부가 아니다. 고래를 포유류만이 아닌 물고기로도 포용해보자는 저자의 설득이 살며시 애처롭게도 느껴진다.
과학적 사실과 분류, 실험실의 확실한 결과치.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물고기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겠지만 ….,
강가에서 환하게 빛나는 은빛 물결위로 힘차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우리는 어린이의 시각으로 물고기는 물고기다! 라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