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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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기숙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친절하고 싼 세탁소나 미용실을 찾기 위해 학교 익명 게시판에 자주 들어가고는 한다. 거기 얼마 전에 올라 온 것이 학교 신문에 있던 기사, '김일성 만세' 에 대한 비난 글이었는데 주제가 주제인만큼 격렬한 토론이 벌어져 댓글이 수십 개나 달리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그러다 누군가 김수영의 시를 올렸고 거기에도 또 토론이 벌어졌다.

 나는 그 댓글을 다 읽지 않았다. 우리 아빠와 삼촌은 정치 얘기를 '한다'와 '안 한다' 로 나뉘어 싸우는 사람들이다. 정치 성향까지는 가지도 않고 선거 때면 감성적인 엄마의 의지에 따라 겨우 투표나 하고 오는 부도덕한 시민이다. 덕분에 내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는 '글러 먹은 판' 정도고, 이런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시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부끄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길디 긴 댓글들을 대강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나 훑는 데만 그쳤다.

 내가 이런 별 쓸모 없는 이야기를 굳이 적고 있는 것은 내가 이 책을 대하는 태도가 이 게시물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솔직해진 것 같아 (심지어 적나라한 것 같아) 좀 걱정이 되기 시작하지만, 실제로 그런 걸 난들 어떡하겠나. 나는 '기침을 하라' 던가 '풀이 눕는다' 던가 정도 밖에는 김수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알아 봤자 기침 : 저항, 눈은 동그라미 치고 순수, 이런 게 다였던 것이다. 읽다보니 그는 전체적으로 김일성 만세' 스러운 시를 줄곧 쓰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격렬한 저항의 정서에 매우 피곤해졌다. 나는 분명히 정호승이나 도종환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툭하면 여편네를 들먹이며 여성 비하의 시선을 내보이지를 않나 미국 놈 좆대강이나 빨라고 하질 않나, 그 들끓는 분노와 설움의 정서는 나를 너무 지치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녹다운 된 것은 그 절대 감기지 않을 것 같은 눈, 집요하게 따라 붙는 시인의 시선이었다. 나는 <인간의 굴레>를 1권, 딱 반 만 읽었는데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무시무시하게 냉혹하고 세밀한 작가의 시선이 모두가 숨기고 싶은 (하지만 너무나도 인간적인!) 지저분한 인간과 인생사를 다 까발려 놓고 있으니 독자이자 인간인 나는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김수영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 하다. 그는 까발려 놓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라고, 우리를 잡고 뒤흔든다. 우리는 '왕궁 대신에 설렁탕집 주인년한테 옹졸하게 욕이나 하는' 그런 인간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향한, 인간을 향한 시선을 결코 편히, 아무렇게나 두는 법이 없다. '사물의 생리와 우매와 명석성을 바로 보려' 하는 그의 눈은 마치 잠을 자지 않는 파수병처럼 감기는 법이 없다. 그는 피로할 정도로 명확하게 세상을 보고 따지려 드는 종류의 사람이었고, 그런 시를 썼다. 심지어 토끼나 식모 같은 시에서도 그의 언어는 감상으로 빠지는 일이 없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다보면 사실 그는 딱히 '김일성 만세'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가 꿈꾸던 것은 단순한 어떤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이상 세계가 아니라 어쩌면 <달나라의 장난> 같은, 그 팽이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사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른다. 리뷰를 써야 하니까 급하게 읽은 네이버 사전은 그를 자유를 꿈꾸던 시인이었던가 현실 참여적인 저항 시인인가 대충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두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도 그를 '대충 그런 식으로' 읽었다. 그러다가 피로해진 나머지 내가 읽고 싶은 것만 더 읽었다. 자장가 같은 것, 잔인의 초 같은 것, 시인의 일기와도 같은 시.

 그러다보니 나는 그가 정말 그냥 '시인' 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분명히 엿 먹으라는 식으로 침을 탁탁 뱉어내는 식으로 난해하고 공격적으로 저항하는 시인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그런 태도에는 인생에 대한 고뇌 같은 것, 전혀 현실 참여적이지 않은, 술에 찌들어서 여편네나 패고는 이상을 생각하고 현실과 비교하며 앉아 우는 시인의 모습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결코 세상을 똑바로 보려는 노력 만큼은 멈추지 않는 사람. 괴로우면 무시해버리고 소시민적 망각에 빠져 살면 될 것을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던 파수병. 파수병의 설움. 그래서 다들 '풀'을 좋아하는가 보다. 이제껏 그 속에서 괴로워하던 이가 약간 달관한 태도로, 더 이상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는 공자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니까.

 나는 그것보다는 '봄 밤'이 좋았다. 그는 아직 공자는 아니지만 조금은 스스로의 상처를 핥기도 했던 것이다. 가끔은 스스로를 귀여워하기도 했던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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