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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ㅣ 보다 역사
문재옥 지음 / 풀빛 / 2025년 4월
평점 :
나의 부모님은 경상북도 군위의 어느 산속 깊숙히 자리한 마을에서 결혼을 하셨고 1960년대 말 이촌향도의 물결 속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당시 달동네였던 상도동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한다. 결혼과 직장 문제로 경기도에 살기 전까지 나는 서울에서 살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난 서울 여자였던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하고 좋아한 이유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저자도 서울 사람이어서 서울을 중심으로 책을 썼다고 하는데, 독자인 나도 서울 사람이었고 서울을 사랑하는 무의식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 책은 강화도와 인천에서 시작하여 북촌과 정동, 남산과 명동 그리고 남대문, 종로와 효창공원, 이화장과 경교장, 서대문형무소, 4·19기념탑, 창신동, 청계천, 을지로 청와대, 세종대로에서 막을 내린다. 1장에서는 개항기와 강화도 조약에 대한 얘기를 담으면서 우리 삶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2장은 개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갑신정변과 을미 사변, 대한제국과 아관파천 등을 생생하게 다루며 3장에서는 새롭게 부상한 일본의 경제적 거점인 명동과 남대문 시장을 다룬다. 그리고 4장과 5장에서는 일제와 독재에 저항했던 우리 민족의 활동을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북한과의 대립과 경제성장의 어두운 그늘을 다루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라는 표지에 쓰여 있는 글귀처럼, 저자는 매일 마주하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장소의 역사적인 서사를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 보고, 나아가 현재에서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는 인간과 시간, 공간이 함께 어루러지는 학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과거의 공간을 실제로 답사하며 당시의 장면을 상상해 보는 과정에서 역사가 스스로에게 생생하게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매일 보고 지나치면서도 알지 못했던 나의 무지를 깨닫는 기회를 부여하는 의미 있고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서울의 어느 한 곳도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고 느리게 좀 더 느리게 거닐 거 같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서울이 좋다. 지방에 다녀 오는 차가 서울로 들어오면 고향에 온 듯 편안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서울이 고향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서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책에 소개된 것처럼 수많은 역사가 숨쉬고 있는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어느 곳 하나 역사적이지 않은 곳이 없겠으나 서울은 특히나 우리 민족의 역사를 크게 변화시킨 사건이 많았던 곳이다. 역사적인 사건과 의미를 되짚어 보기에 서울은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곳이고, 이 책은 나와 같이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 곳곳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딱! 알맞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