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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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희박한 공기 속으로'라는 책을 봤다. 히말라야 등정을 위해 세 팀이 떠났다가 폭풍을 맞아 다수의 희생자를 낸 이야기였다. 운 좋게 몇 시간 일찍 내려온 저자는 그 모든 과정을 글로 기록했다. 꾹꾹 감정을 참으려 애썼지만 행간사이로 자꾸만 삐져나오다 어느 순간 터져버렸다.

그는 그전까지는 등산에 미쳐살았고 모험이야 말로 삶을 삶답게 만들어주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고도 하산하지 못 해 죽어간 동료와 다년 간의 노하우에도 저산소증에 미쳐버린 동료 그리고 산에 대한 진실한 마음과 태도를 가졌던 동료가 벼랑에서 떨어지자 그러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한 순간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잔인하고 냉정한 곳이었다. 등정이란 결국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냉혹한 외줄타기였던 거다.

그런데 이걸 읽고나서 그리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무섭지도 않았다. 얼마 전 읽었던 또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상황을 목격했으니까.

책 '구디 얀다르크'는 구로디지털단지의 IT 업계 종사자인 주인공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무시무시한 업무강도에도 (히말라야 저리가라) 승승장구하던 직장인은 어느 순간 착착 쌓아가던 커리어에 조금씩 금이 가는 걸 느낀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으나 실은 웹하드로 수익을 내는 허울좋은 회사였던 것. 곧 침몰하는 배에서 나와 호기롭게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지만 결국 구디단에서 제일 아래쪽에 위치한 회사에서 목숨만 부지하는 신세가 된다.

아무리봐도 주인공은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한 번의 이직실패였을 뿐인데 그 후로 도미노처럼 커리어가 망가지고 무너져버렸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히말라야 보다 더 무서운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사람을 망치는 건 어쩌면 단 한 번의 실수일지 모른다. 사회에서는 그게 단 한 번의 이직실패일지도 모르고.

읽는 내내 '82년생 김지영'과 '청춘파산'이 생각났다. 건조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더 끔찍한 악몽으로 다가오는 현실이 담겨있어 그 어떤 스릴러보다 무섭다.

희망찬 이야기를 하고싶은데 읽고나니 그럴 수가 없다.
가끔은 밝음보다는 어두움이 다정함보다는 냉정함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건 쓴 약이 되어줄 거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바란다면
생각할 거리가 많은 context를 원한다면
구디단 업계를 경험했거나 잘 안다면
읽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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