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264 : 아름다운 저항시인 이육사 이야기
고은주 지음 / 문학세계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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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랬다. 괜히 글 쓴다고 하면 어렵다고 난해하다고 할까봐 내 맘 가는대로 휘갈겨놓고는 (아니 뚜드려놓고는) 쓱 보고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단어들만 표현들만 문장들만 골라냈다.
그러니 모든 이에게 잘 읽힐 수는 있었겠지만 정작 나 자신은 문장에 목이 말라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신봉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급적 멋은 덜 부리고 짧게 혹은 길었다가도 짧게 쓰기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동하는 동안 그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있으면 더 이해하기 쉽고 더 재미있고 더 간결한 영상들을 볼 수 있는데 굳이 글을 그것도 문학을 읽으라 할 수 있을까. 그 둘이 같은 것만을 추구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소설 '그 남자 264'는 왜 책이 다른 콘텐츠와 다른지 왜 영상이 아닌 글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그 남자, 이육사가 나의 골방에 들어섰을 때부터 그 방은 내게 감옥이 되었다. 나는 그의 이름으로부터, 목소리로부터, 눈빛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수인이 되었다. 그가 내게 한 발자국만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유명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를 자신이 운영하던 서점에 맞딱드리게 된 그녀. 몇 마디 오가고 어느덧 둘은 시를 가지고 속내를 터놓는 사이로 발전한다. 어느 날엔 댄디한 신사처럼 어느 날엔 거친 운동가처럼 그녀를 찾아온다. 하지만 둘은 마음을 품은 채로 몇 번의 강렬한 만남 뒤 헤어지기로 한다.

총을 쥘 수 없었던 날엔
펜을 쥐고
펜을 쥘 수 없었던 날엔
총을 들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행동하던 한 남자. 그는 평온한 날에 머물기엔 너무 큰 뜻을 품었고 집안의 권유로 올린 혼사의 언약을 어기기엔 너무 바르고 곧았다.

한 사람을 애정한다는 것
오래도록 만나지 못 해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에 담아냈지만 도리어 절절 끓는 마음이 전달되고야 만다.

왜 사랑을 보지말고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곱씹을 수록 온 몸으로 퍼져가는 것 같은 감정. 발 끝으로 전해지는 찌르르함. 그 모든 걸 어찌 짧고 간결한 영상에 다 담아낼 수만 있을까.

"글은, 유한한 존재를 무한의 세계로 끌어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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