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지옥
마츠바라 준코 지음, 신찬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몇해 전 우연히 나보다 열 살 가량은 나이가 많은 분들과 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나는 막 결혼하여 희망에 부풀어 무엇이든지 반짝반짝하게 보이고 막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한 터라 생명의 기적을 느끼며 무엇이든지 경이롭게 보였다.

그런데 그날 모든 것이 와장창 깨지는 기분이었다.

"40대가 되면 기쁜 일보다는 안좋은 일로 연락을 받게 되어. 30대에는 친구들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지만 40대에는 친구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돼."

감히 나는 진짜 어른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다. 그때 들었던 몇 가지 단어들. 연명치료, 삽입관, 요양원 등. 그 생소했던 말들이 요새는 부쩍 내 귀에 들려오는 걸 보면 세월이 흘렀음을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도 정정한 부모님 덕분에 아직은 하며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얼마 전 검진을 받으러 갔던 아빠가 황반변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술을 해야하고 하더라도 예전 시력의 60% 수준유지 밖에는 할 수 없다고. 엑스레이 속 아버지의 눈은 참으로 정직하게 말하는 듯 했다.
"아빠는 이제 나이가 드셨단다."
그래도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실은 아빠 수술날까지 매일 아침 끔찍한 비명소리에서 깨어나 하루를 맞이해야 했다.

아직은 이르지만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모든 생명은 태어나 정점을 찍고 노화해간다는 걸 언제인지 모를 끝을 향해 간다는 걸 불편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받아들이고 마주할 시간이다.

최대한 오래사는 것이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죽음 앞에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혼자 남더라도 노년을 잘 보낼 수는 없을까?

책 '장수지옥'은 이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떠난다.
의학과 과학발전으로 찾아온 백 세 시대. 하지만 불로장생이 불가하듯 불로도 불가하다. 노년의 삶이 길어지는 것일 뿐 생자체가 젊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연명치료
삽입관
등으로 음식물을 받아넘기고 숨을 유지하는 상태로 백 세를 맞이하는 이들의 공간에서 저자는 너무나 불편한 고요를 느낀 듯 하다.
과연 이렇게 사는 건 죽는 것보다 존엄한가 라는 생각으로 안락사를 통해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한 이들의 케이스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또한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적어도 아직은. 국가의 도움으로 노년의 삶을 잘 꾸려나가야 하는 게 장수지옥이 아닌 장수천국에 가까울 거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국가의 도움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인이 아닌 젊은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늙기 전에.

나는 아직 죽음을 말하기에 논하기에 어리다. 하지만 생각하고 준비하기에는 어리지않다.

책 '장수지옥'은 매우 덤덤하게 서술되나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가는 송곳으로 보고싶지 않은 곳을 헤집어 놓는 것 같기도 할거다. 하지만 몸에 좋은 약이 쓴 것처럼 가끔은 쓰디 쓴 현실을 책으로 마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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