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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글쓰기
탁정언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글쓰기에 몰입할 때 '나'는 왜 사라지는 것일까? 글쓰기 전의 '나'는 누구이고 글쓰기에 몰입한 이후의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진짜 글을 쓰는 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p.20
이 작은 세 가지 물음에서 시작하는 책, <명상하는 글쓰기>는 내가 이 책의 첫 표지만 보고, 혹은 제목만 읽고 가졌던 책의 내용에 대한 예측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글쓰기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누구인지 알아가기 위한 책이고 그 과정에서 글쓰기를 매개로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나는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지만 늘 글쓰기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글을 써보려고 시도할 때마다 실패했다. 무엇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이 책에서는 글을 쓰기 전에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학자들은 스스로를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나를 '의식'이라고 하고 깨달은 선각자들은 '진정한 나, 참나'라고 한다.
하나 더 알아야 할 개념. 객관화라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발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글쓰기가 명상이 되는 이유는 이 객관화라고 하는 의식 때문이다. 저자는 꾸준히 글쓰기를 하자 흥분이 가라앉고 차분하게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는 시공간을 의식하게 되고 그 속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의식이 주인이 되면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을 알아차린다. 나로부터 한발 떨어지게 되면 명상의 범위를 방, 집, 도시, 바다, 하늘, 우주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 그러면 글을 이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글쓰기 구성의 좋은 방법은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쓰기를 가로막는 벽이 사라지고 글의 길이 생기기 시작한다.
p.62
에고(나)를 알아차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결국 글쓰기다.
이는 불교의 화두명상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가 '나'를 원초적으로 조종하며 뇌는 유전자가 우리를 효율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만든 도구라고 설명한다. 사회심리학자 부르스 후드 역시 자아는 우리의 뇌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라고 말했고 인지신경심리학자 크리스 나이바우어도 자아는 단지 환영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렇다면, 알아차리는 것이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나' 자신이 인간임을 알아차리는 자각이라고 했다. '내'가 인간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나'는 항상 불만에 차 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형식으로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며, 알아차림을 지속하기 위해 글쓰기를 하게 되면 '나' 에고를 나로부터 떠내려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에고가 좋아하는 무기력이나 술, 약물 같은 중독적인 것들에 휘둘릴 것인가? 아니면 에고보다 큰 힘으로 극복할 것인가?
p.107
또한,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노심초사하면서 머리굴리기보다 매순간 편협한 '나'를 큰 힘에 맡기고 무모해 보이지만 달려드는 것 즉, Just Do It을 실천하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어쨌든, 그렇다면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아마 아래의 방식은 일기 형식의 글쓰기가 아니라 소설같은 전문적 글쓰기 방법을 말하는듯 한데,
1. 초안을 잡는데 '묶음시간'을 3~4시간 만들어 몰입해 쓰고 나머지는 하루 20~30분씩 글쓰는 작업을 하라.
2. 카프카처럼 글쓰기, 즉 기승전결, 서-본-결론법을 탈피하여 첫 문장을 신선하게 시작하라.
3. '나'를 3인칭으로 바꿔 쓰면한발 멀리 떨어져서 나를 볼 수 있다.
4. 꾸미는 품사는 줄이고 단순, 간단, 명료하게 쓰되, 역설을 활용하라.
임사체험에 대한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영적 도구에 대한 책 <의식혁명>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렵거나 공포가 아니라 평화로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결국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진정한 나는 왔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생각들도, 몸도 아니며, 변함없이 시공간에 머물고 있다. 생각을 알아차리는 그때 깨달음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선각자들은 말한다. 에고가 온갖 생각으로 방해를 해도 생각과 감정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한발 떨어져서 관찰하게 되면 그것이 명상이라고 말한다. 여러 선각자들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짐을 바라보고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그 배후에 거대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고 그 공간이 바로 '의식'이며 '영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몸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이며 유전자의 명령마저 거부한다.
몸에서 일어나는 경험은 오감을 통해 뇌에 전달되고, 뇌에 전달된 경험은 뇌보다 더 큰 에너지장인 마음을 통해서 경험되며, 마음은 마음보다 더 큰 에너지장인 의식을 통해 경험된다. 의식, 즉 영혼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몸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p.158
글은 일기쓰기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마음의 상처를 자신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억지로 책상에 앉아서 쓸 것이 아니라 영감을 통한 글쓰기를 할 것을 권한다. 영감은 언제 일어날까? 행복한 순간, 즉 명상의 순간에 일어난다.
명상은 목표가 아니다. 변화다. 늘 해야 하는 삶의 일부이지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명상 및 명상하는 글쓰기로 인해 틱장애, 불면증, 알코올 중독, 담배중독, 게으름, 비만 등을 비롯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한다. 이제 나도 가짜 '나'인 에고가 아니라 '참나'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할 때이다. 명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