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구운 사과 파이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7
로렌 톰슨 글, 조나단 빈 그림, 최순희 옮김 / 마루벌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사과 파이는 아빠고, 아빠는 딸에게 세상 그 자체다. 글 작가 로렌 톰슨은 앞선 A를 고스란히 받고 새로운 B를 추가해서 다음으로 넘기는 일을 반복하며 층층이 쌓아가는 커뮬레티브 테일 cumulative tale 방식을 선택해서, 굳건하고 든든한 아빠의 사랑을 적고 있다. 반복과 누적은 이야기를 쉽게 기억하게 돕고 리듬감을 만든다. 덧붙을 내용을 예측하는 과정에 기대감을 증폭시키거나 반전의 재미를 만들 수 있다. 유아를 위한 너서리 라임에도 자주 보인다. ‘The House That Jack Built’가 대표적인 예로 랜돌프 칼데콧을 위시한 많은 작가가 그림책으로 만들었지만 심스 태백의 작업만이 <잭이 지은 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로 번역되었다. 한국어와 영어의 문법체계가 다른 것이 이유일 것이다. 고충은 짐작되나 <아빠가 구운 사과 파이>의 경우, 번역이 내용을 엉키게 한다.

문제가 시작되는 문장을 살펴보자면, “This is the clouds, heaped and round, that dropped the rain, cool and fresh, that watered the roots, deep and fine, that fed the tree, crooked and strong, that grew the apples, juicy and red, that went in the pie, warm and sweet, that papa baked. ”을 이렇게 옮겼다. “둥글게 뭉쳐진 구름이에요. 우리 아빠가 구운 달콤하고 따끈한 파이에 들어간, 맛있는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가지가 꼬부라진 튼튼한 나무에게 힘차게 양분을 빨아올려 전해 주는, 깊고 굵은 뿌리를 적시는, 깨끗하고 상쾌한 비를 내려 주는, 둥글게 뭉쳐진 구름이에요.” 글만 본다면 나무랄 수 없는 번역이지만, 조나단 빈의 그림을 간과한 점이 매우 아쉽다.

조나단 빈은 농장의 하루를 담았다. 아침 햇살에 잠이 깬 아이가 아빠를 뒤따라 큰 사과나무가 있는 언덕을 오른다. 바구니에 사과를 채우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두 사람은 황급히 집으로 와서 다정하게 사과 파이를 굽는다. 인용한 문장이 바로 이 대목으로 조나단 빈은 먹구름이 뜬 집 밖과 안온한 집안, 두 장면으로 나누어 그렸다. 글과 그림이 일치해서 상황에 몰입된다. 번역 책은 집안에서 사과를 손질하는 장면임에도 비구름을 말하고 있어 집중이 떨어진다. 이 문제는 계속 이어진다. 태양이 다시 하늘에 떠오르자, 아빠와 딸은 잘 구워진 사과 파이를 들고 농장 동물들과 함께 언덕 위 사과나무로 향한다. 이번에는 한 문장을 셋으로 나눈다. 반시계방향으로 나선을 그리며 언덕을 오르는 설정인데 각각 농장의 전경, 언덕 위 사과나무, 사과 파이를 강조했다. 농장 가족이 줄지어 달리는 이 세 장면을 연속해서 읽으면 언덕의 규모, 그들의 경로와 속도, 헐떡임과 들뜬 감정을 느끼게 된다. 번역 책에서는 어쩔 도리 없이 그림과 글이 엇나간다. 심스 태백의 경우처럼 한 대상이 한 장면에 담겼다면 이런 혼란이 없었을 것이다. 조나단 빈이 사용한 선과 구성은 완다 가그와 버지니아 리 버튼을 계승한 것으로 심스 태백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다소 헷갈리지만, 내용은 알고 있으니 그림에 주목한다. 슬금슬금 가족을 따라잡은 여우는 과연 아빠가 구운 사과 파이를 맛볼 수 있을까? 팬에 아직 한 조각 남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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