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버즈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9
전춘화 지음 / 호밀밭 / 202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족 작가가 정답게 제안하는 더불어 살아가기


“야, 하다못해 마라탕과 양꼬치도 한국에서 정착을 했는데 우린 이게 뭐니.”

담대한 인상을 주는 표지만큼 쉬이 지나치지 못할 문장이다

작가는 거기서 더 나아가 한국인들 입맛에 맞게끔 본연의 맛을 바꾸어 정착한 마라탕도, 양꼬치도 아닌

살아 숨 쉬는 내 고장의 문화를 삶으로 체험한 사람만이 만끽할 수 있는 민족 고유의 음식인 "야버즈"의 꿈을 꾸겠노라 말한다

고립된 언어와 문화로 말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서로 다른 이념의 공존은 꼭 한쪽의 근간을 뭉개어서

어떻게든 지고 들어가게 만들어야만 진정한 융합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민족적인 색채가 주는 투박한 맛의 정취를 가만히 곱씹다 보면

내가 나인 채로 너와 함께하고자 할 때 필요한 우리의 자세가 무엇인지

미리 길고도 엄숙한 고민을 마친 작가가 정답게도 먼저 손을 뻗어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공명하여 마음 깊이 공감하고 동정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을 보여주기도 하고 (블링블링 오 여사)

각자의 삶에서 귀하게 여겨지는 가치를 두고 누가 낫고 누가 덜하다는 알량한 셈법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사회의 우악스러움을 짚어내기도 하며 (잠자리 잡이)

서로 다른 이념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 개개인은 섬세하게 빚어진 사회와 문화와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을 일깨우는 메세지를 던지기도 한다 (낮과 밤)

그렇게 우리의 것을 잃지 않고 민족의 정기로 여겨지는 '룡두레 우물'을 기반 삼아 '룡'이 되어 날아오르고 싶은 그들이 있다 (야버즈. 우물가의 아이들)

눈을 가늘게 뜨면 모든 것이 축복으로 보인다는 책 속의 구절이 떠오른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한국 사회와, 공생을 위한 불편함이 곧 성가심이 되어버린 어른들의 현실이 이렇게나 딱 들어맞는 문장에 탄식이 흘러나온다

후대에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 우리의 것을 지키는 연구에 매진하여 미리 길을 닦는 용주처럼 작가가 남긴 이 책과 분명히 존재하는 희망과 끓어오르는 책임까지 무엇하나 놓지 않고 나 또한 다양한 정체성이 한 사회에 아름다운 색채를 빛내며 공존할 세상을 후대에 선사하기 위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끈기를 갖고 찾아가고 싶다


조선족 작가의 책은 번역가의 손을 거칠 필요 없이 우리말로 쓰여 곧장 나의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네 옛 고장을 보는 듯한 소박한 정서의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 흥겹게 읽어 내려가다 보면 간혹 등장하는 낯선 민족 고유의 단어들이 읽기의 호흡을 늦추는 경험은 그렇게 오묘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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