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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평점 :
한 달 전에 자주 다니던 이북 카페에 출간 되지 않은 서평 이벤트가 하나 올라왔다.
출간 되지 않은 책을 미리 읽어볼 수 있도록 공짜로 배부하고, 대신 일정 기한 안에 책을 읽어주는 이벤트다. 그 책이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의 새로운 책이라는 소리에 응모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쟁쟁한 경쟁률을 뚫고 이 책을 받았다. 책을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오베라는 남자] 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비교샷
아무래도 실제 배부되고 있는 책과는 내가 받은 비매품은 차이가 좀 있다.
마치 가짜 돈을 미세한 차이로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 ;;
책날개가 없거나 목차와 실제 책 차례가 다른 것은 예사고.. 다산책방 출판사 마크 위치마저 다를 줄은 몰랐다.
뒷표지 비교.
이렇게 비교 해놓고 보니 뽐뿌가 막 온다. 이럴줄 알았으면 비매품 받는게 아니라 책을 사는 건데.
[오베라는 남자]는 영화도 이번년에 개봉 예정이라고 하는데... 마블 시리즈 시빌워랑 같이 나오면 털릴텐데 걱정이다. 그런건 예상하고 개봉하겠지.
읽는데는 좀 오래걸렸다. 책 분량이 좀 있기는 했지만 초반 이입이 어려웠던 것도 이유이기는 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엘사는 7살이지만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르게 많은 것을 안다. 나름 시대를 따르는 아이라서 백과사전 보다는 위키피디아를 본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그녀를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한 자신의 편이 있다. 바로 그녀의 용감무쌍하고 저돌적인 할머니다.
내가 이입이 안된 것은 이부분인데, 나에게는 이런 할머니가 없다. 멀리떨어져 있어 지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던 외할머니는 그렇다고 치고, 집에서 눌러앉아 계시는 친할머니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내가 읽어왔던 어느 문학 작품,매체에서도 할머니 같은 인물은 없었다. 할머니는 하루종일 집에 눌러 앉아 계시며 세끼 식사와 빨래 걷기에 혈안을 다하신다. 그러고 장판 아래에는 항상 가족 몰래 침 뱉은 휴지와 부스럭 거리는 검은 봉지 여러개를 숨기곤 하신다. 또한 할머니가 갔다오면 화장실은 심각한 암모니아 오염장이 된다. 큰집에서 내몰려 차남인 아빠가 모시는 우리집에 있는 건데도 전화로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딸만 챙기려 하신다. 나로써는 마음상으로 할머니는 할머니라 인식하기가 힘든 사람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 할머니가 이런 할머니었다면, 하는 소박한 바램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대학교를 가러 나갈때도, 아빠가 일을 하러 나갈때도 잘 갔다 오라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엘사의 할머니라면 손주를 보는 눈빛, 행동, 말투 하나 하나 전부 달랐을 것이다. 시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할머니가 있는 가족은 진짜 부럽다고 생각한다.
책의 사건은 엘사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엘사 앞으로 편지를 남겼다. 그리고 다른 인물들에게 자신의 편지를 전해주기를 원했다. 엘사는 할머니의 편지를 전달해가면서 아파트에 있었던 수많은 인물들을 알아간다. 아파트의 인물들은 그동안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에서 나오던 여러 인물들과 매개체들로 치환되어 있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아픔을 갖고 살고 있었다. 쓰나미로 자식을 잃은 사람, 전쟁에 나가서 슬픔을 겪고 만 사람,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고 싶은 사람... 엘사는 이런 이들의 마음을 돌아본다. 물론 매개체가 된 것은 할머니가 전해달라던 미안하다는 편지였다.
요즘 시대에 편지라니, 이메일이나 문자로 하면 되지. 엘사와 할머니의 차이점은 이런 면모에서 두드러진다. 엘사는 종이책보다는 이북을 사랑하며 -아이패드 하나면 충분하다!- 위키피디아를 이용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디지털 문화권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이메일이나 문자보다는 역시 사람을 마주하게 되는 편지가 제격이었다. 엘사와 할머니를 통한 신구의 대립은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세대 차이를 메꾸는 요소가 되어주기도 했다. 엘사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들을 아파트에 있는 인물들의 말을 통해서 전달받는다. 이는 편지를 통해서 가능했다. 이야기가 시작할 때와 끝나갈 때의 아파트 주민들의 거리는 확실히 다르다.
가슴 따뜻해 지는 소설은 언제 읽어도 좋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책이 그러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주변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마력 또한 존재한다. 작품 내에서 나오는 말이 있다.괴물이라고 해서 다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슬픔으로 인해서 탄생한 괴물도 존재한다고. 우리 할머니는 언제부터 우리 가족에 대해 괴물같은 존재가 되었을까? 나는 어릴때부터 우리를 살갑게 대한 할머니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나름대로의 슬픔을 가져왔고 그 것을 지금까지 꽁꽁 싸매놓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한 번 할머니의 말을 들어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가끔은 손자가 할머니의 영웅이 되어주는 순간도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