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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의 모험 -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10월
평점 :
내가 쓰는 책상은 문구들의 모험이 모인 종착지이다. 샤프 펜슬로 시작해 싸구려 지우개, 잉크똥이 묻어나는 저가 만년필과 서랍장, 포스트잇, 커터칼과 그 외 잡다한 문구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상품이지만 자연스럽게 우리 인생의 하나가 되었고 많은 이들의 인생을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는 이들을 처음 쥐고서 학교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들과 친구가 되어 공부를 한다. 성인 이후야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의무 교육이 확실화된 지금 문구라는 존재는 학창시절 자존심의 표지가 되기도 했고 수집욕을 자글자글 자극시키기도 했던 그런 존재였다.
96년도생인 나는 특히 필통의 발전 과정의 정점기를 겪었는데 초등학교 때에 유행했던 플라스틱 필통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단순하게 필기구를 보관하는 용도에서 그치지 않고 '놀이기구' 역할까지 해내는 필통이라니! 물론 그런 류의 필통은 여러가지 조건에서 불편함이 많아서 초등학교 이후로는 볼 수 없는 장난감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이 필통이 초등학생 들 사이에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외에도 초등학교에서 연필 사용을 강조하고, 연필의 양쪽을 깎는 행위를 막거나 지우개 똥을 모아 던지는 행위들을 규제했던 것도 소소한 과거의 유물이다. 솔직히 초등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연필을 썼지만 지금은 편리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샤프 세대가 되고 말았다. 결국 우리에게 문구의 역사는 그랬다.
문구의 역사. 우리가 선택하여 사용하는 '문구'들은 어떤 역사를 거쳐서 지금의 과정에 이르게 된 걸까. 사실 이 문구라는 것의 발전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을 진보 시키고 작업을 능률적이게 만든 '공신'이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볼펜, 스테이플러, 테이프, 포스트잇이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있는가? 이들이 없는 작업 환경은? 그런데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문구의 모험'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필요하지 않던 새 제품'을 창조해내 '제품에 필요성을 담은' 혁신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진짜 기본적인 문구들을 제거하고, 스테이플러나 포스트잇 같은 제품을 보자. 스테이플러 이전에는 집게나 파일철로 서류를 모았을 것이고 포스트잇은 제작 당시에는 쓸모 없는 아이디어처럼 비춰졌다. 특히 포스트잇은 상품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짜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파격적인 수요 '생산'을 이루어야 했다. 물론 전혀 필요할 것 같아 보이지 않던 포스트잇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이 되었는지는 자명하다. 필자도 포스트잇은 과제나 공부에서 결코 뺄 수 없는 문구로 사용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만 해도 교문 앞에서 나눠주는 광고용 포스트잇을 어디다 쓰나 고민하곤 했는데 말이다.
그렇다, 결국 문구의 모험은 우리의 필요의 발전이었다. 도구의 필요성을 부여하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우리었고 우리는 '그 물건의 필요성'을 스스로 찾아냈다. 그리고 존재가치가 분명해져 인정받은 이들은 문구로 살아남았다. 물론 이 책에서는 각 회사의 제품들이 경쟁하며 살아남은 문구들의 기술적인 측면들도 다룬다. 하지만 교양으로써 우리가 알아 둬야 할 것은 이들의 최초의 생산이며 얼마나 소비자들의 생활에 깊숙하게 침투해 갔는 지이다.
마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탐험 하듯, 문구는 우리의 필요함을 발견했다.
문구야 말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할 귀중한 사업 아이템의 원천이자 발명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