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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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죽음과 불륜, 그리고 남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을 덮고 난 지금, 가장 가슴에 남는 건 '남미'라는 다른 세상에 대한 환상과

특별한 경험에 대한 동경이다. 작가 바나나가 줄곧 이야기하는

거대한 대자연 이과수 폭포, 핫초콜릿과 같다는 서브마리노,

믿기지 않을 정도의 캄캄한 남미의 밤, 뜨거운 햇살과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짙푸른 하늘(사진으로 보니 영화 <십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등

모두 독특하고 이국적이고 매력적이다.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저자가 던지는 시선은 혼돈스러웠던 내 생각을 정리해놓은 듯하다.

" 남편의 사랑은 매일 걸려오는 전화에서도 전해진다. 엄마처럼 무턱대고가 아니라 자신감 없게, 그것이 타인이란 것일까. 가족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타인이 서로에게 신경을 썼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마음이 누그러져, 함께 지낸 긴 세월에 떠밀려, 오늘 밤, 남편에게 전화로 얘기하고 싶어질 것 같다." - <하치 하니> 중에서

"슬픔이란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단지 엷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어 그것으로 위로 삼을 뿐이다. 저들의 슬픔에 비하면 나의 슬픔이란 이 얼마나 치졸한 것인가." - <하치 하니> 중에서

"내게 그것은 무엇일까? 누가 기다리고 있으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성격도 아니고, 상자도 무섭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 안에서도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러니까 그것도 성장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과 어떤 식으로 마주할까? 어떻게 대처할까? 나는 아직 젊고 두려움을 모른다.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보고 싶었다. 밖에서 보면 태평하고 평화로웠던 우리 가족에게 조그맣고 깊은 어둠이 있었고, 그 어둠은 이 묘지를 감싼 정적만큼이나 역사를 은닉한 풍요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 <조그만 어둠> 중에서

"중요한 것은 식욕이 아니라 신경을 써주는 마음이다. 생활에서 그런 것이 사라지면 사람은 점점 탐욕스러워진다." - <플라타너스> 중에서

아르헨티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말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간 가볼 수 있을까?

한 가지, 사진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나마 있었다면

훨씬 더 그 세상을 마음에 품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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