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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계속 읽고 싶었지만 책을 구입할 때마다 잊어버려 리스트에서 누락됐던 책.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이번 구입 때는 잊지 않고 장바구니에 쏘옥 넣었다.
중학교 때 읽은 이광수 님의 소설 <흙>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분량이지만 내리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이 책이 갖고 있는 강력하고도 재미있는 서사의 힘이다. 3대에 걸쳐 여성의 삶을 통해 각각의 시대를 읽어주는 점, 시나리오 작가라는 약력에 걸맞게 장면장면을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치밀한 묘사 등... 읽는 내내 이야기 속에 온통 몰입하게 만든다. 소설이 재미가 없다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 아닌가. 이 책에는 맛있는 앙꼬가 듬뿍, 아주 가득하다.
벌써 다음 찐빵이 기다려진다.
* 본문 중에서
"사내들이 칼을 들고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 물고기는 언젠가 그녀가 바닷가에서 보았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사내들이 작두만한 칼로 거침없이 고래의 배를 썩썩 가르자 피와 재낭과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렸다. ...(중략)... 여러 종류와 해초들과 작은 물고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질러댔지만 금복은 왠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체 해체되어 가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느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