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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왕일민.유현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예전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짧은 이야기 소개에도 소식을 전하는 사회자나 참석한 게스트, 방송을 시청하는 나 역시 깊은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한 개밖에 남지 않은 치아를 한껏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 숨박꼭질이라도 하듯 수레 속에서 빼꼼이 얼굴만 내밀고 있는 귀여운 할머니 사진들, 아들이 주는 음료수를 어린아이마냥 빨고 계신 할머니 사진 속에서 나는 2년 전 돌아가신 아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도하는 고통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생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된다. 나 역시 아빠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같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을 지난 후 나는 남자와 여자가 아닌 인간을 만나게 되었고, 두려움 대신 당당함으로 세상을 향해 나서게 되었다. 그건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할머니 모습에서 마지막 아빠의 모습을 발견한 건 한평생 남자와 여자, 어머니와 자식 등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이 '생의 소풍'을 마치는 순간 우리는 결국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한쪽 끝이 막다른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자주 놀았다. 우리는 선을 그어놓고 달리기를 했고 골목길 끝에 있는 담에 손을 댄 후 누가누가 빨리 돌아오나를 시합하곤 했었다. 왜 빨리 달려와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냥 빨리 달려온 사람이 이긴 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어서 그 시절 다른 특별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그 골목길에서 그 놀이를 하며 저녁 늦게까지 놀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그 시절 그 골목길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산다는 것'이 어린 시절 그 놀이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아 보이지 않아서일까? 그저 누가 1등으로 돌아올까라는 목표로 나는 있는 힘껏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결국 갔다오면 나는 제자리인 것을. 1등으로 오나 꼴등으로 오나 우리는 모두 결국 제자리인 것을. 이 책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말한다. "애비야, 쉬엄쉬엄 가자, 세상에 바쁠 것 없는데."
'이 시대의 마지막 효자 이야기'라는 책의 카피가 말해주듯 그들의 이야기는 감동에 눈시울을 적시고 부끄러움에 때때로 책을 덮게 한다. 몇 번을 거듭하여 책을 다 읽은 후, 생각해본다. 이제는 혼자가 되신 엄마께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게 뭘까? 그래서 생각해 낸 한 가지. 엄마에게 책을 읽어드리자. 책을 읽고 싶어도 눈이 아른거려서 오래 읽지 못하는 엄마에게 소리내어 하루에 몇 쪽씩 읽어드리자. 그 첫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지금까지 40쪽 가량 읽었다. 쉽지 않다. 침이 마르기도 하고 초등학교 시절 이후 소리내어 읽은 적이 없어 머리도 아프다. 하지만 엄마가 무척 좋아하신다. 아직 끝까지 읽으려면 5일가량 더 읽어야 한다. 왕일민 할아버지의 900일간의 여행과 비교하면 이것은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내 인내를 시험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