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말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고, 역사라는 일람표 위에 갈겨 쓴 낙서처럼

인간집단 속으로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존재, 한여름에 흩날리는 눈송이와도 같은 존재,

그 존재는 현실인가 꿈인가, 좋은가 나쁜가, 귀중한가 무가치한가?

- 로베르트 무질, <통카> / 문학평론가 남진우의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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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시대의 글을 많이 접하지 않은 탓에 이 소설은 소재의 신선함과 더불어 근대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저 역사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이 작품은 인간 존재에 대한 많은 근원적 질문과 물음을 남긴다.

1905년 시작된 멕시코 이민의 역사. 100년이 되던 몇 년 전, 몇 장의 빛바랜 사진과 함께 멕시코 이민자들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언론에 소개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애니깽’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상영되었던 것도 기억난다.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거대한 수식어도 한몫을 했지만, 그것보다 더 내 손을 잡아끌었던 것은 한 친구의 짧은 한마디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식민지 시대에 대해 일반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책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어렵고도 재미없는 책들뿐이다. 그나마 접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 김영하의 <검은꽃>과 같은 소설뿐이다.”

그 친구의 말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곧바로 이 책을 나의 서가에서 탈출시켰다.

<검은꽃>의 가장 큰 장점은 철저히 독자를 위한 책이라는 점에 있겠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세밀한 묘사는 독자를 위한 작가의 지독한 배려일 것이고, 한편의 역사서를 읽는 듯한 사실적 서술과 그것을 통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물음은 동인문학상의 권위를 다시 한 번 입증시키는 작가의 치열한 노력일 것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이 책의 빽빽한 편집은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어마어마한(?) 분량은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이내 단점에서 장점으로 탈바꿈한다.

<검은꽃>을 읽은 후 나는 여러 권의 동일 시대 책과 작가가 참고도서라고 밝혀둔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100년 전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통해 역사와 세계는 둥글다는 것을 절감하며 그 시대의 인물, 역사, 사상 등에 관심을 가지고 한 권 한 권 섭렵해나가고자 한다. 이제 <검은꽃>은 주변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또 한 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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