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똑같은 자격을 갖는다고 배웠다.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어린이가 피어 보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있었다. 글을 쓴 분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틀린 비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삶은 그런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은 새싹이 나고 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 P163
엄마가 된 친구와 나는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간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끝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 역시 아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을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자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 예전처럼 서운하지 않다. 언제든지 손 내밀 수 있는 자리에, 잘 보이는 곳에 내가 가있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내가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해도 상관없다. 어른은 그런 데 신경 쓰지 않는 법이다. - P181
‘노 키즈 존‘이든 ‘노 배드 페어런츠 존‘ 이든, 차별의 언어인 것은 마찬가지다. 쏘아보는 쪽이 어린이인가부모(실제로는 엄마)인가가 다를 뿐이다. ‘얌전한 어린이‘를 선별해서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것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이라는 데에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한 걸까?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공간에서조차 심사를 받아야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 차별인가, - P209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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