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이들만 국민인가? 못사는 이들은 국민이 아니라는 말인가? 이쯤에 우리는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약 두 달간 병마와 싸우다 이겨내고 퇴원하는 저 노인이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살아남은 것에 죄책감이 든다. 내가 이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왜 내가?" 안도와 기쁨의 말보다 그에게 죄책감을 들게 한 것은 그 어마어마한 병원비다. 치료받다 퇴원하며 마냥 기뻐하고 홀가분해야 할 국민이 도리어 엉뚱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미국.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정상은 아니다.
폐쇄 중에도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학교는 텍사스를 비롯해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리건 등 여러 주에서 시행 중이다. 또 점심 한 끼뿐만 아니라 다음 날 아침 두 끼까지 가져가는 아동들이 계속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학군에서는 거의 1만 1,000명의 학생들이 두 끼의 식사를 무료로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 동안 아이들이 먹는 식사의 전부다
미국에서의 이런 격차가 확연히 목도되는 곳이 있다. 바로 공간이다. 불평등은 공간별로 존재한다
루이지애나의 흑인들은 코로나 이전 이미 죽음의 그늘에 뒤덮여 있었다. 뉴올리언스시 인근 지역에 유독성 화학물질을 내뿜는 석유 정유 및 석유화학제품 공장들이 200여 개가 넘게 집중돼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듀폰, 쉘, 모자이크 퍼틸라이저 등의 회사가 그것들이다.
미국에서는 아예 1차 전문의가 없는 지역이 부지기수다. 이것을 의료 사막healthcare desert 혹은 1차 진료 사막primary care desert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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