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게 다 쓸데없는 짓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동안에도 사는 게 꽤 재미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계속 생겨났고, 오래된 삽질의 결과로 뜻밖의 기회들이 속속 찾아왔다. 다시 덮은 구덩이 곳곳에 어떤 씨앗들이 나도 모르게 심어졌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증명할 길은 없으나 분명 오래전 내가 판 구덩이에서 난 싹임을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순수한몰입, 외부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삽질의 조건이다. 실컷 빠져들 만큼 재밌다는 점이 놀이하고도 닮았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직접 해봐야 안다. 구경꾼은 절대로 그 맛을 알 수 없다. -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