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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ㅣ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아이들은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상상을 한다. 나를 괴롭히는 악당이 있다면 램프 속 요정이나 라임오렌지 나무가 분명 나를 구하거나 위로해 줄 거라 믿는다. 아이들의 고단한 현실은 판타지에 반영된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성냥팔이 소녀가 한 개의 성냥을 그어 만들어낸 따뜻하고 풍요로운 환상의 세계, 그 세계가 찬란할수록 당시 가난한 어린이들의 현실은 더없이 비참했을거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윤영주 작가의 <마지막 레벨 업>을 읽고 처음엔 그저 요즘 아이들의 입맛에 맞춘 게임 이란 소재를 적당히 잘 다룬 이야기, 결말은 어른의 입장을 반영해 ‘게임만 너무 많이 하며 너를 망치게 되니 적당히 빠져나오렴’이라고 훈계할 거란 예상을 했다. 예상은 많이 빗나가지 않았지만, 이야기 전개는 예상과 달리 아이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학교 폭력과 일진, 엘리트 코스를 밟기를 바라는 부모의 과도한 기대, 나의 꿈인지 부모의 꿈인지 알 수 없는 진로, 뭐 하나 스스로 결정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세계, 그 세계 안에서 자유롭고 활력이 넘치는 아이들, 자신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세상의 윤리쯤은 헌신짝처럼 여기는 어른의 무서운 이기심, 아이들은 조정하기 나름이라는 어른들의 착각과 아무리 척박한 상황에서도 성장하는 아이들, 그리고 성장한 아이들의 윤리적인 선택과 우정 등, 생각할 거리가 무궁무진하게 넘쳐나는 이야기다. 이 모든 이야기를 가상현실 게임 속에 너무나 생생하게 버무려놓았다. 게임을 좋아하는 어린이 독자가 책도 게임만큼 재밌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는 기대를 부른다. 게임을 모르는 어른은 더 많은 걱정과 반성을 하게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정말 재밌다.
<마지막 레벨 업>의 결말은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생각나게 한다. 악의 화신 용에게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형 요나탄을 구하기 위해 사후 세계에서 그다음 사후 세계로 용감하게 넘어가는 동생 칼, 동화가 발표됐던 당시 어른 독자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듯한 칼의 이런 결정을 두고 비난을 쏟아냈다지만, 어린이 독자들은 통쾌한 결말에 무척 만족했다고 한다. 나 자신을 지키며 생동감 있게 살기 위해서는 폭력과 부도덕이 넘치는 세상을 과감하게 깨 부숴야 한다. 사탕발림에 속지 않는 어린이들의 결기가 부럽고 사랑스럽다. 멋진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용감한 선우와 원지와 같은 아이들을 가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고 싶다. 어느 날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불만만 가득하던 내 아이가 실컷 게임을 하고는 나에게 싱긋 웃을 때, 어쩌면 나도 슬쩍 마주 웃을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야단을 치기보다 아이가 처한 현실과 그 마음을 한번은 미뤄 짐작해 보는 슬기로운 부모가 아주 잠깐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준다. 사춘기 아이들이 어른에게 느끼는 모난 감정을 <마지막 레벨 업>을 통해 가상 체험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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