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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고 불행한 자들은 약점을 가리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들의 감정적 공허감을 채워줄 수 있다는 건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커다란 힘이자, 언제까지고 오래도록 이용할 수 있는 힘이다.

결단력이 없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을 다룰 때는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도록 내몰아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에게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카트린은 정부(情婦)가 권력자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걸 일찍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 앙리 2세의 정부가 다름 아닌 악명 높은 디안 드 푸아티에였기 때문이다. 카트린은 그 일을 통해 그녀의 남편과 같은 남자는 (자기 손으로 이룩한 게 아닌 선대에서 물려받은) 지위가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여자를 손에 넣고 싶어한다는 걸 알아냈다. 그러한 욕구에는 맹점이 있었다. 여자가 자신이 정복당한 것처럼 행동하면, 남자는 정부가 자신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 디안이 바로 그러했다. 그런 약점을 역으로 활용해 남자를 정복하고 뜻대로 움직이는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카트린의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그녀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궁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로 구성된 자신의 ‘유격대’를 자기 남편과 같은 약점을 가진 남자들에게 풀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여자를 정복하고 싶어하는 남자는 사실 엄청난 무력감을 감추고 있다.

비스마르크는 왕이 주위 사람들에게 억눌린다고 생각한다는 걸 잘 알았다. 또 군사적 배경이 있으며 명예 의식이 높지만, 왕비나 정부 관리들 앞에서는 겁 많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빌헬름은 속으로는 위대하고 강력한 왕이 되고픈 열망이 있었지만, 루이 16세와 같은 운명을 맞을까 두려워 그런 야심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남자가 용기를 과시하는 것은 소심함을 숨기려는 경우가 많은데, 거꾸로 빌헬름은 자신의 소심함으로 용기를 과시하고 당당해지고 싶은 욕구를 덮어버렸다.
비스마르크는 빌헬름이 내세우는 평화주의의 이면에 영광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걸 감지했다. 그래서 왕을 부추겨 결국 세 번의 전쟁을 치르게 하고 독일 제국을 탄생시켰다. 소심함은 이용하기 좋은 약점이다. 소심한 사람들은 자신과 정반대인 나폴레옹처럼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심지가 굳지 못하다. 그러니 당신이 그들의 나폴레옹이 되어 그들이 대담한 행동을 하도록 떠밀어야 한다. 당신을 의지하게 만들면서 당신의 필요에 이바지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통제 불능의 열망을 가지고 있으면 당신은 약하고 하찮고 불쌍한 사람으로 보인다.

당신을 소유하고 싶어한다면, 유혹의 첫 단계를 잘 밟은 것이다. 한편 당신을 해치고 싶어한다면, 그들을 불안하게 하고 게임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보잘것없는 적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면, ‘당신이’ 보잘것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적을 쳐부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적은 더 엄청나 보인다.

뜻하지 않게 문제를 부각시키지 말라. 그 문제가 얼마나 많은 우려와 불안을 낳고 있는지를 공공연히 드러내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고, 콧대 높은 귀족처럼 구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 괜히 은혜를 베풀어 그 문제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해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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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당신이 표현하라. 모두가 공감하는 바를 표현하면 큰 지지를 받는다. 가장 두드러지고 대단한 목표물을 찾아 대담하게 공격하라. 세상 사람들은 당신의 모습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고, 설령 당신이 패배한다 해도 당신에게 영예와 힘을 줄 것이다.

유혹당하는 것이 매력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 잠시 우리 자신에게서 그리고 의심으로 가득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혹하는 사람이 머뭇거리는 순간 그 매력은 깨져버린다. 우리가 유혹의 과정을 의식하게 되고, 상대방의 의도적인 노력을, 상대의 자의식을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러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선택을 통제하기 위한 고전적인 방법이다. 당신이 없으면 찾아올 혼란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킨 후에 ‘선택권’을 주어라. 나는 물러나 있을 테니 다가올 결과를 감당하라, 나는 이러이러한 상황이 돼야만 돌아올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선택을 통제하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권력을 주는 쪽을 택한다. 나머지 한쪽은 더 끔찍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니농 드 랑클로는 남자에게 의존하다가 늙어서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일방적으로 남자에게 종속되는 삶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자기만의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희한하게도 그녀 자신뿐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만족감을 주었다. ‘지불인’은 돈을 지불하면서도, 니농이 원할 때만 잠자리를 한다는 사실에서 성취감과 흥미를 느꼈다. 남자들은 그녀가 욕망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순교자’는 수치스럽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모종의 우월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총애받는 사람’으로 선택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니농은 남자들에게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었고, 그러한 자유는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지불인을 통해 그녀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을 얻었다. 그리고 순교자를 통해서는 권력의 핵심 요소를 얻었다. 자신을 갈망하고 추종하는 무리를 항상 주변에 두고, 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연인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부와 영예와 육체적 만족이 언젠가 내 것이 되리라는 환상은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그 희망 하나 때문에 남자들은 터무니없는 상황마저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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