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귀 - 듣기의 수행성, 애도와 기억에 관하여
유은 외 지음 / 히스테리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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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귀』, 유은 기획 및 글, 히스테리안 출판사

— 기억을 ‘하는 것’으로, '듣기'를 정치적 실천으로


유은의 『애도하는 귀』(히스테리안, 2025)는 세월호라는 참사를 둘러싼 목소리와 장소를 예술적 실천과 연결한 아티스트 리서치 북이다. 저자는 남겨진 자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강조하는 작가의 시선과 함께 움직였다. 기억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우리를 흔드는 행위라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이 귀를 통해 수행된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나 역시 오랫동안 애도의 방식과 마음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어왔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말할 때, 그 마음은 진실할 수 있는가? 마음의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수많은 생각들은 어딘가 불완전한 흉내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은 그 오래된 의문에 뜻밖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애도는 완전한 재현이나 증명의 행위가 아니라, ‘듣기’라는 수행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말이 되지 못한 신음과 침묵, 공백의 떨림을 들으려는 태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고통을 그저 곁에서 함께 감당하려는 몸짓, 그것이 애도의 길일 수 있음을 나는 새롭게 깨달았다. 듣기의 수행성은 나의 귀와 몸을 훈련하는 행위이고, 그렇게 듣는 순간 애도는 불가능성을 껴안는 실천으로 바뀐다는 것. 결국 애도의 방식은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있었다. 


「물기의 지형」에서 유은 작가는 교실을 애도의 장소로 경험한다. 공기청정기와 백색등의 소음이 가득한 멸균된 공간, 그 안에서 가능한 것은 정돈된 의례뿐이었고 울컥하는 침묵과 비명은 자리를 잃었다. “무엇이 ‘온전한’ 애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가?”라는 물음은 한국 장례식 문화와도 겹쳐진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의 국화와 정해진 절차, 예법은 애도를 틀 속에 가두고 눈물조차 규율한다. 더 나아가 장례식장은 상주에게 과도한 소비를 강요하며 슬픔을 비용으로 치환하는 듯하다. 결국 애도의 자리는 마련되지만 정작 애도는 불가능해진다. 


이어 히스테리안 연구자 강병우는 「기울임」에서 규격화된 애도는 멸균된 의례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자리’의 문제는 지워진다고 말한다. 자리가 고정되는 순간 타자의 목소리는 희석되고, 진정한 애도는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그는 “애도는 이 ‘자리 없는 장소’에서 기억을 수행한다”고 했다. 자리 없는 장소란 정해진 형식이나 틀로 묶이지 않은 여백과 공백,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자리다. 이 통찰은 교실에서 느낀 답답함과 겹치며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듣기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책에서는 푸코의 분석을 빌려 ‘듣는 자의 권력’을 지적한다. 의사, 교육자, 재판관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자는 듣는 자의 자리에서 발화를 요구하고, 그 발화를 해석하고 평가한다. 반면 화자는 이미 말하기 이전부터 제약을 받으며, 말하는 순간 의미의 상실을 경험한다. 듣기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고, 권력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애도하는 귀』는 바로 이 지점을 전복하려 한다. 선별된 말만이 아니라, 말이 되지 못한 소리와 침묵, 신음까지 들으려는 노력은 권력화된 듣기를 넘어서는 윤리적 실천인 것이다. 그것은 그저 귀를 귀울이고 몸을 흔드는 미약한 실천일 수 있지만 바로 거기에서 애도의 가능성이 시작된다.


마지막「문을 나서며」에서 유은은 교육자의 자리를 성찰하며, 교사는 권력을 가진 ‘듣는 자’일 수 있기에 작은 목소리가 끝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동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실은 지식과 권력이 고정된 공간이지만, 교사가 듣는 자로서 권력을 내려놓을 때 ‘자리 없는 장소’로 바뀌어 보이지 않던 목소리가 드러나는 자리로 변한다. 그 순간 교육은 곧 애도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도하는 귀』는 우리에게 애도의 자리를 새롭게 상상하라고 말한다. 멸균된 교실도, 규격화된 의례도 아닌, ‘자리 없는 장소’에서 비로소 애도는 가능하다. 듣기는 끝내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는 그 아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곁에 서서 들어주고 함께 버텨 줄 수는 있다. 애도는 완전하지 않은 자리에서 서로를 지탱하려는 작은 실천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겼다. **강력추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유은의 듣기를 위한 시도, 묵음으로 된 소리의 자리를 더듬어 찾아가는 길은 자신의 형상을 지우는 일이다. 자신을 연민하는 슬픔의 통제에서 벗어나, 작가는 슬픔이 결코 자신을 가둘 수 없게 하는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생을 겪고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겪는 비애와 사랑을 느끼는 일이다. 생의 모든 것이 ‘삶’의 수레바퀴에 연루된 존재임을 이 작은 책에 각인하며, 우리가 죽고 죽어 기억이 일으킬 바람을 기다린다. - P9

‘사회적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떤 죽음이 사회적 죽음으로 인정되는가? 인정되지 못한 채 잊혀지는 죽음은 없는가? 여전히 듣지 못하는 목소리, 혹은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소리와 울림은 어디에 어떻게 자리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는 왜 사회적 죽음을 기억하고자 하는가? 타자의 자리에서, 타자이기에 행해야 하는 애도의 형태는 무엇인가?
듣는 몸과 기억하는 몸에 관한 미적 실천의 현상을 가늠하며 물음표를 따라갑니다. 이 책은 그 여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 P12

교실이라는 공간이 애도를 위한 공적 장소가 되었다. 수많은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공간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흩어진다. 온전히 애도하는 마음만으로 젖어 들기에는 어딘가 한 켠을 막아 세운다. 체기가 서린다. 공기청정기와 백색등의 발열 소리가 귀를 찌른다. 적절히 멸균된 장소 안에서 나는 그에 맞는 정돈되고 다듬어진 애도처럼 보이는 행위만이 가능함을 확인한다. 무엇이 ‘온전한’ 애도를 가능하지 않게 한 걸까? 기억을 위한 장소를 구상함에 있어 왜 꼭 공립학교의 관습적 형태를 복제해야만 했을까? 비명과 한숨과 신음, 이명을 위한 틈을 찾고 싶다. 애도를 위한 장소의 마땅한 형태에 대해 떠올린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존을 위한 공간의 조건은 무엇일까 - P31

말하기, 그래서 말해진 것의 남루함이 불러일으킬 엄청난 경악 속으로 나 자신을 밀어넣기. 그 말이 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서둘러 이렇게 덧붙여야만 할 것이다.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 - P36

기억이 하는 것이 트라우마 서사에서 사랑과 연대의 서사로 이어질 때, 안으로 말려들어가기만 하던 내면의 관습을 멈출 수 있다. 나 아닌 세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는 세계와의 접합지점을 새로이 찾게 하는 기점이 된다….

기억이 하는 것이 트라우마 서사에서 사랑과 연대의 서사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애도의 여정을 함께 걷는다.

하지만, 그 애도는 불완전하다. 어쩌면 불가능하다. 불완전하고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애도의 자리를 유영한다.

애도하는 자의 형상을 떠올린다. 그 자리에는 잠시나마 ‘우리’가 머문다. 우리는 계속해서 구성되고 변화한다. (111)

우리 안에 들어온 이들은 주체가 된다. 애도하는 주체로서 우리는 상실의 자리 곁에 머문다. 어떤 기억하기를 행할 것인가 묻는다. - P111

듣기, 왜 소리 내기가 아니고 듣기인가? 소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들,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 매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소리를 어떻게 낼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주목해왔던 것이다. 내게 소리는 ‘듣기’의 문제이다. - P116

김애령은 푸코의 분석을 빌려 청자의 권력에 대해 언급한다. 근대 지식 권력은 "듣는 위치", 즉 "의사, 교육자, 재판관의 자리에서 ‘고백’을 요구한다." 힘을 가진 자는 듣고 해석하고 평가한다. 그에 반해, 고백해야 하는 화자는 청자의 해석과 평가를 받기 이전부터 공적 말하기에 부합하도록 부서진 말에 표면에 기성의 기표를 덧입혀야 한다. 화자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의미의 상실을 경험한다. 청자는 듣는 동시에 듣지 않음으로써 기울어진 권력관계를 유지한다. 여기서 듣기의 관계적 실천은 실패하며, 청자에게 가닿지 못한 채 맴도는 말들은 변방으로 흩어진다.
실제로 현실정치에서 권력의 자리에 있는 이들의 귀에 가닿을 수 있는 말은 언제나 공적 형태로 가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한계로부터 고민의 가지가 한 줄기 뻗어 나온다. 선별된 말 이전의 소리와 침묵, 말이 되지 못한 말들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당신이 하지 않은 말과 하지 못한 말, 말줄임표와 쉼표 혹은 침묵 속에 숨겨진 말들을 들 - P118

으려면 나는 나의 귀와 몸을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글을 쓰자고 다짐한 것은 예민한 귀가 되기 위한 조건과 환경을 톺아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일지 모르겠다. 침묵이 귓가를 스친다. 침묵으로 이어지는 말줄임표를 가늠한다. 들을 수 없는 환경을 묻는다. 들리지 않는 것들의 자리를 더듬는다.
나의 듣기에 대한 관심이 듣는 몸에 대한 윤리적 성찰과 요구로, 듣기의 윤리적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들을 것인가? 냉소와 폭력과 같은 자가 당착에 빠지지 않는 윤리적 방법론으로서의 애도와 듣기에 관해 묻는다. 타자의 침묵까지도 살펴 들을 수 있는, "충분히 날카로운" 동시에 온전함에 가깝게 자신을 비우고 들을 수 있는 귀를 단련하고자 한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질문하고 온전함에 가까운 듣기로 이어가는 대화를 만들어 갈 방향을 살핀다. - P119

타자를 ‘바깥’에 세워 애도하는 일은 완벽한 윤리를 추구하려는 모더니즘적 충동은 아닐까. 불가능성이라고는 말로 고통과 책임의 자리에서 응답하길 주저하는 것은 아닐까? 의례화된 장소는 타자에 대한 두 손 모은 마음과 잔잔한 애도가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길길이 날뛰는 애도의 행위도, 타자도 없다. 타자는 바깥에 있고 애도자는 여기에 있다. - P129

애도는 이 ‘자리 없는 장소’에서 기억을 수행한다. - P137

가끔 살아있다는 것과 죽어있다는 것의 사이를 분간하기 어렵다.

고통에 따른 글쓰기가 공허를 이기지 못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것에 대해 쓸 수밖에 없다.(중략)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죽음이 우리 안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 P143

교육자의 자리가 타자의 자리가 될 수 있을까요? 말과 표정을 가다듬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나 불신 어린 말을 덜어내기, 듣는 자로서 교사가 지닌 권력 또한 망각하지 않기, 작은 사람의 말이 마침표에 가닿을 때까지 동행하기. - P195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자신과 타자를 돌아볼 수 있다는 수행 가능성을 발견해서 일까요? 그 순간들 속에 겹쳐진 수많은 서사의 주름을 더욱 깊이 잡아가고 싶습니다. - P196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학교에서 맺는 수많은 관계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소외시켰습니다. 교사가 ‘교육전문가’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과정은 결국 그 자신의 역량을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한정시킵니다. 동시에, 교육공간이자 돌봄공간인 교실에서 맺어지는 정동적 여결과 연대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공적 돌봄의 외주화, 돌봄과 교육의 구별 짓기는 학교라는 사회 시스템을 위태롭게 합니다. - P197

비실재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이미 탈실재화(derealization)의 폭력을 겪은 것이다.(…) 비실재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이 가해진다면, 폭력의 관점에서 볼 때 폭력은 그 사람들의 삶을 해체하거나 부정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그들이 삶이 이미 부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살아남아 있기에 다시 (또다시) 부정되어야 한다. 그들은 언제나 이미 상실된 상태이거나 아니면 아예 "존재했던" 적이 없기에 애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죽어있음(deadness)의 상태로 끈질기게 계속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므로 죽여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애도하는 귀는 그러므로 불가능을 애도한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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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2025.하반기 - 제51권 2호
한국문학사 편집부 지음 / 한국문학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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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2025년 하반기호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다룬 좌담을 통해 사회 갈등, 취향 공동체, 생활 태도와 소비 방식의 변화를 점검하며 2010년대와 2020년대 문학 세대의 차이를 비교했다. '비평의 눈'에서는 임정연이 성해나의 『혼모노』와 강보라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서평했다. 신작시 특집은 이제니 시인의 「되기—거울을 바라보는 거울」외 4편을 평론가의 글과 함께 실었다. 그 외에도  여러 시인과 소설가들의 신작을 선보인다.


▪️신작시 특집 | 이제니 ㆍ 시세계


"그러므로, 되어보기

―이제니, 「되기―거울을 바라보는 거울」 외 4편" 

| 송연정


그러니까 그것은 되어가고 있는 중인 표면이다


물감은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았다

마르기 직전의 흔들림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시간의 호흡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것은 화창한 날의 기분을 비출 수도 있다

그것은 굳이 두고 가는 마음을 헤어릴 수 있다

그것은 손끝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낼 수도 있다

그것은 기억나지 않는 빛을 기어이 반사할 수도 있다

그것은 물풀과 향기와 창문과 이름을 반추할 수도 있다 


색은 고체가 되어가고 있다

덧칠의 덧칠의 덧칠의 덧칠이 향하는 이야기에 기꺼이 귀 기울이고 있다


말라가는 것이 색의 색을 지워내고 있다

말라가는 피부처럼 갈라지는 흩어짐으로 색의 변모를 돕고 있다


시간의 표면은 굳어가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다

굳지 않기 위한 몸짓을 너는 오래도록 지켜본 적이 있다

늙어가는 나무처럼 비어가는 마음을 오래도록 들여다볼 때마다 

너는

―「되기―말라가는 물감의 표면」 부분


문학 장르 가운데 시는 늘 가장 어렵게 다가왔지만, 이번 『한국문학』에 실린 이제니의 시와 비평 글은 내 마음에 와닿았다. ‘되어감’ 속에는 수많은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함께 얽혀 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은 채 그저 ‘되어보는’ 일이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송연정 평론가의 말은 오래 남는다. 그 문장은 내가 걸어가는 삶의 길에서 마주치는 불확실성과도 겹쳐지며, 그럼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용기를 주는 것만 같다. 


이제니의 시는 존재를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끝없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보여준다. 물감이 굳어가면서도 흐르는 모습은 정지와 운동, 고체와 액체 같은 대립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 사유는 곧 나 자신에게도 닿는다. 내 안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공존하며, 나는 늘 ‘되어가는 중인 나’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거울은 이 흔들림을 비추고, 글쓰기는 그 흩어진 입자들을 모아 변화의 과정을 드러낸다. 이 미완성의 과정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믿어야하는거겠지. 


'being'과 'becoming'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곧 살아가는 방식임을 배운다. 그래서 시가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나를 터칭하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다시 읽고, 다시 읽고 싶은 시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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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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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우대한 생각들, 특별증보판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저작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책으로 『청춘의 독서』를 꼽는다. 그 이유는 이 책에 자신의 감정과 사유가 가장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책들이 주로 지식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청춘의 독서』는 그가 읽어온 책들을 바탕으로 삶과 인간, 사회와 역사에 대해 품어온 생각과 감정을 풀어낸 글이다. 이번 특별증보판에는 새롭게 「자유론」 편이 더해졌다. 저자가 오래전부터 아끼던 책이기도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격랑 속의 정치 현실을 이해하고 견디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처음 집어 들었던 순간을 생생히 떠올린다. 대학입시를 앞둔 불안한 시절, 그는 밤을 새우며 이 소설을 읽고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수단을 써도 되는가”라는 질문 앞에 붙잡혔다. 가난은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도 연결된 문제라는 직관은 이후 그의 사유를 이끄는 출발점이 되었다. 결국 그는 도스토옙스키와 마찬가지로 악한 수단으로는 결코 선한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을 바꾼 것은 소수의 ‘비범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다수가 스스로를 구원해온 과정이라는 사실을 역사 속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그에게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공산당 선언』이 무거운 현실에 짓눌린 영혼에게 투쟁의 신념을 불어넣었다면, 리영희의 글은 그것을 한국의 현실 속에서 다시 묻도록 했다. 과연 인간은 연대와 사명감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가? 이기적 욕망을 억누르고도 지속될 수 있는 사회란 가능한가? 그는 이 물음 앞에서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했다. 이상과 현실, 신념과 인간 본성 사이의 균열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짜 지식인의 출발점일거라고 생각했다.


특별증보판에 새롭게 실린 『자유론』은 저자가 나이 들어 다시 붙잡은 책이다. 밀의 자유주의는 “스스로 설계한 삶이 가장 적합하다”는 개인 선언으로 다가왔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그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는 주장에 그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 주어진 운명은 누구도 선택할 수 없지만, 원하는 삶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깨달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청춘의 독서』는 저자가 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을 오늘 다시 펼치며 건네는 대화다. 책은 독자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어떤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꾸준히 책은 읽어 오고 있지만 그것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읽는 것과 사는 것은 간극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청춘의 독서』를 읽으니 누군가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청춘의 시절, 저자가 책 속에서 길을 찾았듯, 나 역시 책과의 대화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지금 자신만의 길을 묻고 있는 이들에게 기꺼이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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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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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반려동물을 가족이라 부른다.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때로는 사람보다 더 깊은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으레 가족은 그래야 하고, 그런 존재에 반려동물을 포함시킨다. 하지만 이 관계는 정말로 평등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일까.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 속에 동물을 사랑하는 나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족이라는 프레임 속에 반려동물을 넣는 행위 자체가 언뜻 평등하고 따뜻해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 중심의 질서 속에 그들을 편입시키는 일일 수 있다. 가족이라는 말은 애정을 전제하지만, 동시에 위계와 소유의 언어이기도 하다. 누구를 가족이라 부를지는 결국 인간이 결정하며, 그 결정 속에서 반려동물은 선택권 없이 이름과 관계, 그리고 운명을 부여받는다. 그 안에서의 사랑은 진심일 수 있지만, 그 사랑의 틀과 조건을 만든 건 언제나 인간이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한다. 주인공 와 주변 인물들의 삶 속에서 반려견 이시봉은 인간 관계의 균열과 소유욕, 위선, 상실과 애도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나게 한다. 작품은 현재와 과거,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왕실 비숑의 혈통사와 앙시앙 하우스인물들의 서사를 병치한다. 프랑스 혁명과 전쟁 속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개들의 운명, 강아지 혈통을 보존하려는 인간의 계획, 사랑과 죄책감이 뒤섞여 결국 돈과 관리로 수렴되는 현실이 교차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인간은 동물을 인간화하지만 인간의 동물화는 참지 못한다는 냉정한 통찰을 던진다.

 

이시봉과의 우정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의 소망은 순수해 보이지만, 작품 속 수많은 사례는 그마저도 인간의 시선에서만 유효한 순수일 수 있음을 경고하는 듯했다. 인간이 만든 종(),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 사랑이라는 명분 속의 자기애는, 동물과의 관계를 끝내 불평등하게 만들며 인간 자신조차도 불행하게 했다.

 

제목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역설적이게 느껴졌다. ‘명랑함은 강아지가 지닌 순수한 현재성, 조건 없는 즐거움을 상징하지만, ‘짧고 투쟁 없는 삶은 그 생이 인간의 선택과 통제 속에서 주어진 조건에 순응한 채 끝났음을 드러낸다. 투쟁이 없었다는 말은 선택과 저항의 기회조차 없는 존재들의 운명을 의미하는 것만 같았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실제로 8년째 함께 사는 강아지 이시봉을 바라보며 이 이야기를 썼다고 밝힌다. 그는 소설은 강아지에 대해 말하기엔 적합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강아지를 둘러싼 인간의 책임을 묻기엔 여전히 유효한 장르라고 말한다. 이것은 곧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동물을 길들이고, 품종을 관리하며, 관계를 소유한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동물일까, 아니면 결국 나 자신일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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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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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소설 그녀를 지키다2023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같은 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설은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조각가 미모와 귀족 가문의 딸 비올라 사이의 사랑과 예술, 정치적 격변을 그린다. 이 시기는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이 집권하던 때로 파시즘의 부상과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개인의 삶과 예술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모는 왜소증을 가진 가난한 집안 출신의 조각가로, 어린 시절부터 조각에 대한 열정을 품고 성장한다. 그는 오르시니 귀족 가문의 딸 비올라를 만나고 우정을 나누며 그녀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다. 비올라는 귀족 소녀이지만 가족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인물로 외부세계에 대해 차갑고 거칠게 반응한다. 그것은 자신을 억압해온 세상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자, 상처를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이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길 갈망한다. 비올라는 미모를 통해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 두 인물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지킨다는 것은 이 소설에서 미모가 비올라를 향해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올라가 미모에게 선물한 신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는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보호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킨다는 말은, 때로 얼마나 교묘하게 자유를 빼앗는 폭력이 될 수 있는가?

 

미모는 왜소증을 가진 가난한 집안 출신의 조각가로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비올라를 만남으로써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누군가를 갖게 된다. 그가 비올라를 데리고 도망치고, 감추고, 끝내 무언가를 하지만 그 과정은 유폐라는 단어는 독자를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지게 한다.

 

비올라는 보호받기를 원한 걸까, 아니면 이해받기를 원한 걸까? 그녀가 처한 세계, 가정, 그리고 제도는 모두 그녀를 위해 움직였다고 말하지만, 결국 그녀의 목소리는 침묵시켰다. 이러한 맥락으로 바라봤을 때 이 작품은 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누군가를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불안과 소유욕을 포장하고 있는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서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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