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병원에 갔더니 진단서 발급을 위해서는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한다며 온갖 질문지를 건넸다. 개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문장 이어 만들기였는데, 아마도 피검자의 심리 상태 파악에 도움이 되라고 만든 거긴 하겠지만, 남이 써 놓은 앞 문장에 뒤를 채워 넣는 건 너무 너무 싫고도 어려운 일이다. 원래 글도 내가 쓰는 것보다 남이 써 놓은 걸 수정하는 게 더 어렵잖은가 말이다. (다른 얘긴가...?) 한 항목도 빼먹지 말고 바로 떠오르는 생각을 쓰라는데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없는 걸 어쩌나. 당장 생각이 안 나면 건너뛰었다 다시 오라는데 건너뛴 문장이 반이 넘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당장 떠오른 생각이 아니라 고민 고민하다 억지로 떠올린 문장을 되는 대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검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러니까 병원 옮기기는 이제 그만.
1번 문장부터 난감했다.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기면” ... 그래서요? 어쨌다고? 이상한 일이 생기면 생기는 거지.
한참 뒤에 돌아와 글자를 한 2분 동안 노려보다 완성했다.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기면” ... “애인에게 전화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생겼나 보다’라고 쓸 걸 그랬다)
그 중 가장 난감했던 것은 “나의 아버지는” “나의 어머니는”과 “대개(대부분?) 아버지들은” “대개 어머니들은” 뭐 이런 것들이었다. 다른 문장들도 그랬지만 이것들은 정말 대충 채워 넣을 말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부분’이라니, 세상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을 겪어본 것도 아닌 내가 무슨 일반화를 할 수 있겠나. 하지만 문장에 대한 감상을 적는 게 아니라 문장을 끝맺는 과업이 주어졌다는 게 문제.
고민 끝에 나는 아부지는-불쌍하다, 어무니는-안됐다라고 적었다.
그게 대부분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대답이었는지, 내 부모에 대한 답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또 지금 생각해 보니 똑같이 썼어도 뭐 어떤가 싶다.)
어릴 때 결혼해서 꼬꼬마나 다름없던 시절 우리 남매를 낳은 우리 부모님은 지금 내 나이 때 애들이 벌써 대학을 졸업한 상황이었다. 내가 인생의 의미를 찾겠답시고 학교도 빼 먹고 사고 치고 다니던 시기 그들은 이미 두 아이의 부모였으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피 터지게 고민할 무렵, 그들은 토끼 같은 새끼들 거둬 먹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한다. 중년이 된 지금도 내 한 몸 건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그 어리디 어린 나이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러 꾸역꾸역 출근하고(그게 싫어 내가 때려치운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 삼시 서너 끼 밥을 해 먹이고(밥은 나 편할 때 해 먹는 것이다!)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도 않는 온갖 부업을 하고(여러 일 하면서 힘들게 사느니 안 벌고 안 쓰겠다!), 아이들을 키워냈다.
이렇게 내 나이에 그들을 대입해 보면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된다. 부부싸움 후 집에 불을 싸질러버리겠다고 한밤중에 에프킬라에 불을 붙인 화염방사기로 우리를 위협했을 때 아버지는 겨우 서른 안팎이었고,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한참을 울다가 새벽에 시골로 향한 어머니, 그렇게 당신의 아버지와 작별했을 때 그의 나이도 고작 서른 쯤이었다. 적잖은 날 둘이 합세해 어린 나를 쥐어팼을 때, 그들 역시 ‘아가’들이었다. 그러니 요즘 같은 때, 아니 최소한 나와 비슷한 때 태어나기만 했어도 그들의 삶은 아주 많이 달라졌을 텐데, 해봤자 소용없는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물론 어렸다는 이유로 모든 게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 안의 어린아이는 이런 방식으로 과거의 부모님과 화해를 했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좋은 세상에, 그들의 노년은 부디 풍요롭고 평화롭기를. 그렇다고 2박 3일 이상 붙어 있으면서 엄마랑 안 싸울 자신은 도저히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