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대책 없이 두근거렸고, 안정 시 60대 중반인 분당 맥박은 100을 넘고 있었다. 당연히 호흡도 가빴다. 그러나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정수리가 마비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온몸의 신경이 화를 발산할 곳을 찾아 전신을 돌아다니다 결국 찾지 못해 정수리로 모여든 것만 같은.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란 걸 수사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겪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전류가 흐르는 물체를 갖다 댄 것도 아닌데 쭈뼛쭈뼛.
그러고 보니 젊은 시절 한동안 가슴 아픈 상황이 되면 가슴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가슴이 아프곤 했는데, 어느새 그 능력(?)은 언제 없어진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가슴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된 건 심장이 튼튼해져서인가, 무뎌져서인가.
아무튼 마비는 점차 심해져 사고라는 걸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황급히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정신줄을 붙들고 맞은편 약국에 갔다.
"선생님, 사람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요,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쭈뼛거려요.
이럴 때 먹을 수 있는 약이 있을까요?"
약사는 설명과 함께 한방 물약 한 병과 알약, 그리고 흡수속도가 빠르고 강력하다는 두통약을 건네며 말을 보탰다.
"제가 좀 힘든 손님 만난 다음에 먹는 거예요."
약을 들여오면 파는 것보다 당신이 먹어서 품절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약사는 씁쓰레 웃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러나 나의 스트레스 요인인 '그'는 약국의 진상 고객보다 강력해서인지 아니면 내 스트레스 취약성이 약사에 비해 높은 건지 약은 내 증세를 조금도 해결해 주지 못했고, 결국 나는 가정의학과를 거쳐 정신건강의학과를 가게 된다.
첫 진료에서 전문의(강조)가 실시한 우울증 검사 결과, 나는 딱 1점 차이로 '중증' 아닌 '중등'으로 분류되었다. (분하다... 1점 때문에 1등을 놓치다니.)
나중에 검사지를 보니 '조리 있게 말한다' 이런 항목에서 감점(...)을 받았더라.
친구에게 아니 가서 자기 증상 설명하는데 조리 있지 못할 게 뭐 있담! 하고 투덜댔더니 예전에 이미 한동안 의학의 도움을 받았던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럴 수 있어... 난 처음에 갔을 땐 말이 제대로 안 나오더라."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기서 강조는 '베토벤 바이러스'가 아니라 '한 장면'이다. 첼로를 전공했지만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며 집에 연습용 첼로 한 대 없었던 정희연 '아줌마.' 많은 사람들이 그 '똥덩어리'가 리베로 탱고를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을 드라마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좀 다른 장면이다.
- 남편: 아 대체 왜 한 거야? 오케스트라는. 말해 봐!
- 희연: 아니... 이, 저, 그러니까 저. 내 마음이...
- 남편: 마음이 뭐?
- 희연: 저기, 마음이 답답, ... 내 이름이...
- 남편: 아 빨리 말 못 해?!
- 희연: (울먹이기 시작) 못 해!!!!!!!!!!!!!! (일동 놀람) 답답했어어! 나는 그냥 청소나. 애들은 맨날. 당신은!!!
- 남편: 이 여편네가 어디다 또 소리를 질러?
- 희연: 그래서 했어. 언제까지 기다려.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당신 퇴직, 언제까지 기다려. 나, 나 정희연이야. 내가 왜 똥덩어린데! 내가 집에 없는 것도 모르고.
- 남편: 아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 희연: 아 진짜, 아우 가슴이... 아... (흐느낌)
- 남편: 말을 해 보라구, 말을!
- 희연: (남편 쳐다보다 울며 밖으로 나감)
경험과 사고는 언어로 표현된다. 지배당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다른 이유는 그 언어가 지배자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피지배자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맞지 않았다.
- 정해경(2003), 섹시즘(Sexism): 남자들에 갇힌 여자, 361쪽
말이라는 건 일단 누군가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당연히 언어는 그 소통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일단 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여성의 생활 영역은 상징적 의미에서든 현실적으로든 '문 안쪽'으로 제한되었다. 또한 소통이란 건 말을 주고 받는 상대가 동등 이상의 관계임을 전제로 한다. 내게서 출발한 그 말이 상대에게 가 닿아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려면 기본적으로 내 말에 대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존중, 최소한 인식이나 인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적 영역에서 형식, 제도적으로나마 여성의 말이 남성의 것과 같은 무게를 가지게 된 건 언어의 역사에 비해 매우 짧다. 이러니 여성이 언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한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한(恨)'이나 '화병(火病)'이 대개 여성의 이미지와 겹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똥덩어리 아줌마'는 남편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단편적인 표현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건 다른 기회에.
여기까지 쓰다 말고 제목과 본문과 결말이 서로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순 당황하였으나. 뭐, 일기니까 일기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