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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모르는 아이 - 학대 그 후, 지켜진 삶의 이야기
구로카와 쇼코 지음, 양지연 옮김 / 사계절 / 2022년 2월
평점 :
<생일을 모르는 아이>는 다섯 살 때까지 생일을 모르고 엄마에게 맞지 않으려고 숨죽인 채 벽 구석에서 버텼던 ‘미유’, 아무 표정 없이 커튼 뒤에 숨어버리고 ADHD 진단을 받은 ‘마사토’, 시설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며 일종의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 미래가 없다는 걸 느끼고 어른이 된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여기던 ‘다쿠미’, 같이 살자는 생모의 말 한마디에 집과 학교라는 환경 모두 무너뜨리고 말았지만 다시 생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아스카’, 학대와 성폭력을 당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었지만 자신의 딸에게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오리’.
아동학대는 중대한 문제이고 언론에서도 떠들썩하게 다루기 때문에 주목을 하기에도 받기에도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아이들의 ‘사건 이후’는 주목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을 그 이상으로 주목하게끔 만드는 게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겠지만, 어쩌면 피해를 받은 아이들보다 가해자의 처벌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사그라들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학대를 받았던 아이들은 정상적인 일상을 보내기 힘들 거라는 정도,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이 책은 그 아이들의 현실, 가해자인 부모에게서 벗어난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아주 가깝게 보여준다. 그리고 학대라는 말로 뭉뚱그리고 일반적으로 다 비슷한 상황과 후유증을 겪을 거라는 생각을 지워버린다. 아이마다 겪은 일이 다르듯이, 증상도 다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짐작하고 판단했을까. 결국, 아이들에게 무심했다는 뜻이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부모와 집이라는 공간으로부터 습득되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음식을 하면 온 집안에 냄새가 가득하다는 것과 ‘밥 먹자.’, ‘씻자.’, ‘자자.’라는 일상적인 말이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것을. 그리고 학대에서 벗어난 아이들에게 그러한 당연함을 처음부터 알려주고 받아들이는 일은 필요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학대가 장애라는 심각한 손상을 아이에게 입힌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랐다. 마음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기만 하면 나을 것이라 여겼던 안일한 인식이 무너지면서 한없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 P106
‘일반적으로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라 말하지만 학대를 보고 있으면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를 향한 아이의 사랑이야말로 무조건적이라고.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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