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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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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카하라’와 ‘사요코’의 딸이 강도에 의해 살해당하고 11년 후, 사요코가 길에서 한 노인에게 살해당하게 되면서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

‘나카하라’와 ‘사요코’의 딸이 강도에 의해 살해당하고 11년 후, 사요코가 길에서 한 노인에게 살해당하게 되면서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


428쪽이라는 장편 안에 꽤 많은 인물이 얽히고설킨 채 등장한다.

반려동물 장례식을 치르는 일을 하는 남자 ‘나카하라’, 그의 전 부인이자 취재기자인 ‘사요코’, 사요코의 취재에 응하며 도벽증 환자이기도 한 ‘사오리’, 대학병원 의사 ‘후미야’와 그의 아내 ‘하나에’ 등등.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가 사요코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풀어진다. 시점 역시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전개되어서 이들 한명 한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의 특이점은 프롤로그였다. 프롤로그에서 후미야와 사오리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나카하라와 사요코의 딸이 살해당한 후 그들이 이혼하고, 그로부터 11년 후 사요코가 살해당하는 이야기가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읽으면서 프롤로그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이는 후반부에 가서야 이들의 관계가 왜 중요한지, 가장 먼저 등장해야만 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작가의 이야기 구성과 전개 능력에 감탄했다(!)


공허한 십자가. 왜 제목이 공허한 십자가일까? 이는 사요코의 원고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언급되었던 말이다.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p202)

이렇듯 작가는 사형제도에 대하여, 살인자에 대하여, 속죄하는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언급하며 묻는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내리지 않은 채 소설은 끝난다.

좋은 소설이란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과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추리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장르 속에서 진지한 사유가 담긴 ‘묻는’ 소설을 써왔기 때문에 오랜 시간 사랑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그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


죄를 지은 사람은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산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작가는 아마도 여기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과 메시지를 풀어나간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산다지만, 정작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사는 것일지 의문이 들 때가 있기 때문에. 과연 누가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사는 것일지 의문이 들 때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십자가 앞에 ‘공허하다’라는 말을 붙인 게 아닐까.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읽으며 ‘공허한 십자가’를 오래 곱씹으며 사형과 속죄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사형은 무력하다. 그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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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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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로 크게 나뉜 이야기들은 그 계절에 만나는 사람과 물건에 맞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각 챕터의 첫 장면이 비슷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첫 장면은 ‘미니 트럭의 운전석에서 내리자~’라는 문장과 각 계절에 어울리는 묘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사찰 오호지의 주지와 거래하는 모습까지 계절마다 교묘하게 달라진다. 주지와 거래하면서 히구라시는 지갑에 돈이 없다고 말하는데, 겨울에는 돈이 있다는 말로 바뀌기도 했다. 이러한 구성이 특이하면서 재미있었다.

추리, 서스펜스 장르 위주의 글을 쓰는 작가다운 책이었다. 그저 일상적이고 따뜻하고 잔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 일본 애니, 시트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일반적인 추리, 서스펜스의 어둡고 무거운 소재와 분위기와 다르게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라서 쉽게 읽혔다.

중심인물들의 캐릭터와 관계 역시 유쾌하게 다가왔다. 코난에 빙의한 듯이 추리를 해내는 가사사기는 그 추리가 다 틀린다는 점이 웃음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의 추리를 믿고 좋아하는 여자아이 미나미와 한 걸음 뒤에 서서 진짜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수습해나가는 히구라시. 특히 히구라시가 가사사기와 미나미를 위해 그의 엉터리 추리를 하얀 거짓말로 감싸주는 모습 역시 흥미로웠다.


가사사기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엉터리 추리도 은근 그럴싸해서 재미있었고, 히구라시의 추리는 엉터리 추리의 비하인드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었다. 이렇듯 비슷하면서 다른 두 인물의 추리가 유쾌하고 소름 돋아서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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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박애진 외 지음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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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눈을 되찾기 위해 인당수 광산에 있는 마스터키를 찾으러 뛰어든 기술자 집안의 딸 ‘심청’, 용궁주의 간을 위해 살아온 클론 ‘코닐리오’와 함께 버킷리스트 여정을 떠나는 용궁주의 부하 ‘타르타루가’, 밤의 도시에서 인공태양 가까이 가기 위해 폐허로 떠나는 ‘럭키’와 ‘루비’, 부활 행성으로 떠난 언니 ‘장화’를 찾아 나선 우주비행사 ‘홍련’, 과학으로 성공한 ‘흥부’에 대한 형 ‘놀부’의 인터뷰까지.

예비 편집자의 시선에서 이러한 기획은 참 멋있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참신한 조합이기 때문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컨셉을 듣기만 해도 혹하지 않는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떤 이야기인지 기억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과 요즘 인기 있는 장르인 SF의 만남. 크게 낯설거나 반감이 드는 조합도 아니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단편 <흥부는 답을 알고 있다>를 제외한 4편의 소설은 ‘여성 인물의 모험담’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존 고전 속에서도 이 인물들의 대담함을 엿볼 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희생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자신의 처지에 순응하는, 억울한 희생. 하지만 SF로 재해석된 인물들은 진취적인 모습에 가까워서 인상적이었다. 이들의 영리함과 대담함, 솔직하고 거침없는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빠의 무기는 바로 이 눈이야."
아빠는 날 때부터 시력이 나빴다. 조금 전 끼운 눈은 할머니가 인당수 아래에 있는 광산에서 찾아온 것이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만 해도 누구나 허가증만 구입하면 수집가로서 인당수 광산에 드나들 수 있었다고 했다. 인당수 광산은 대폭발 이전에 만들어진 곳으로 지금은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기계 부품들이 있었다. - P10

"왜 폐허로 직접 들어가서 구하지 않아요?"
럭키가 묻자 호랑이 외계인이 웃었다.
"먼지 날리는 폐허에 뭐 하러 들어가? 돈을 내고 저녁 먹고 구경하다가 한두 시간 후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면 그만이야. 이봐, 학생, 너 도끼는 가지고 있지?"
호랑이 외계인이 묻자 루비가 주머니에서 도끼를 꺼내 들고 흔들었다.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시를 한 호랑이 외계인은 어슬렁어슬렁 가버렸다. 걸음을 따라 흔들리는 꼬리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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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모르는 아이 - 학대 그 후, 지켜진 삶의 이야기
구로카와 쇼코 지음, 양지연 옮김 / 사계절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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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을 모르는 아이>는 다섯 살 때까지 생일을 모르고 엄마에게 맞지 않으려고 숨죽인 채 벽 구석에서 버텼던 미유’, 아무 표정 없이 커튼 뒤에 숨어버리고 ADHD 진단을 받은 마사토’, 시설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며 일종의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 미래가 없다는 걸 느끼고 어른이 된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여기던 다쿠미’, 같이 살자는 생모의 말 한마디에 집과 학교라는 환경 모두 무너뜨리고 말았지만 다시 생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아스카’, 학대와 성폭력을 당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었지만 자신의 딸에게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오리’.

 

아동학대는 중대한 문제이고 언론에서도 떠들썩하게 다루기 때문에 주목을 하기에도 받기에도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아이들의 사건 이후는 주목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을 그 이상으로 주목하게끔 만드는 게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겠지만, 어쩌면 피해를 받은 아이들보다 가해자의 처벌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사그라들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학대를 받았던 아이들은 정상적인 일상을 보내기 힘들 거라는 정도,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이 책은 그 아이들의 현실, 가해자인 부모에게서 벗어난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아주 가깝게 보여준다. 그리고 학대라는 말로 뭉뚱그리고 일반적으로 다 비슷한 상황과 후유증을 겪을 거라는 생각을 지워버린다. 아이마다 겪은 일이 다르듯이, 증상도 다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짐작하고 판단했을까. 결국, 아이들에게 무심했다는 뜻이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부모와 집이라는 공간으로부터 습득되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음식을 하면 온 집안에 냄새가 가득하다는 것과 밥 먹자.’, ‘씻자.’, ‘자자.’라는 일상적인 말이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것을. 그리고 학대에서 벗어난 아이들에게 그러한 당연함을 처음부터 알려주고 받아들이는 일은 필요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학대가 장애라는 심각한 손상을 아이에게 입힌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랐다. 마음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기만 하면 나을 것이라 여겼던 안일한 인식이 무너지면서 한없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 P106

‘일반적으로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라 말하지만 학대를 보고 있으면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를 향한 아이의 사랑이야말로 무조건적이라고.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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