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틱낫한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은 경부고속철도의 상촌터널로 9975m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긴 터널이 내 마음속에 있었다. 남편이 실직한 6년이라는 세월은 그 자체가 기나긴 암울한 터널이었고 그 세월의 길이만큼 내 마음속에도(햇볕도 들지않고 공기도 탁하고 하늘도 볼수없는) 기나긴 터널이 생겨났다. 화를 내야할 대상을 찾지 못했기에 화가나도 그냥 꾹꾹 참을수 밖에 없었고,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화를 다스린다는것은 더더욱 알수없었다.

틱낫한 스님의 < 화 > 라는 책은 제목만으로 울화가 치밀었다. 국가경제를 그 지경에 빠뜨린 위정자들에게도, 가진자들의 한심한 행태에도 울화가 치밀었지만 워낙에 술을 못마시는 나는 한잔으로 울화를 푸는 그 작은 자유조차 누릴수 없었다. 내 마음은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져 갔고 대인관계 기피증 까지생겨났다. 집안경제가 다시 회복되어가기 시작했어도 내겐 아직 햇볕도 닿지 않았고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날 내게로 온 <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크나큰 위안이 되었다. 그냥 책 표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 마음속의 길고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처음으로 본 세상은 너무나도 순수한 미소로 다가왔다. '우리는 잘못된 것에는 그토록 많은 주의를 기울이면서 경이로움과 생명력을 주는 것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는가'그랬다.

내가 기나긴 암울한 세월이었다고 믿었던 그 시절에도 경이롭고 창조적인 일은 도처에 있었던 것이다. 다만 내가 눈을 감고 보지 못했을뿐.내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경이로운 순간' 임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매일 매일 바쁘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우리들에게 틱낫한 스님은 말한다. 걸으면서 명상하라고, 긴장을 풀고 삶을 누리라고, 온전하게 깨어 있으라고.

나는 이제 아침마다 1시간씩 걷는다. 걸으면서 내가 딛고 있는 지구별을 생각하고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로 하루를 시작한다. 땅위를 평화롭게 걷는 진정한 기적을 매일매일 체험하며...... 내 무의식 깊은곳까지 찾아와 잠들어있는 나를 깨워준 가슴 뭉클한 한 구절,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 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 숨쉬는 지금 이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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