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sing Sun: The Decline and Fall of the Japanese Empire, 1936-1945 (Paperback) - 『일본 제국 패망사』원서
Toland, John / Modern Library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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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태양 (The Rising Sun)


저자 존 톨런드는 현대 전쟁사 전문 저술가다. 주로 2차대전과 태평양 전쟁 관련 저서를 많이 냈다. 그는 1971년에 이 책 "떠오르는 태양"으로 퓰리쳐상 논픽션 역사 부문에서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일본제국 패망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의 주제는 일본은 왜 태평양 전쟁을 벌였으며  그 경과는 어떠했고 교훈은 무엇인가이다.

먼저 전쟁의 발단 요인을 저자는 크게 세가지 정도를 드는 것 같다. 첫째는 일본 군부 엘리트 집단에 퍼져있던 독특한 선민의식이나 오도된 사명감 따위가 전쟁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일본정신(대화혼)이라고 하는 것을 국가 지도 이념으로 절대시하면서 이를 동아시아에 수출 정립시킴으로써 동아시아를 백인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의 나태함과 우매함을 진작시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다. 이 일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단하는데 국내적으로는 일왕의 눈을 가리는 부패한 민간정치인의 처단이 한 축이 되고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영토 확장 전쟁이나 벌이는 주제에 일본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대하는 미영귀축을 타도하는 것이 또 하나의 축으로 대두된 것이다.

두번째 문제라면 군인들이 현실 정치 속에서 문민통제가 안 되는 제도의 미비가 전쟁 장기화라는 결과를 초래한 요인으로 지적한다. 당신 군부의 요구로 내각에는 전쟁상, 해군상 등의 직제가 있었고 군부의 합의에 의해 천거된 이들이 사의를 표하면 무조건 내각이 붕괴되는 관례가 관철되고 있었다. 민간 직업 정치인들이 군부의 동향에 좌지우지되면서 책임있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전쟁 초반 승기를 잡는 것처럼 보일 때는 무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세가 역전되고 국민이 도탄에 빠질 때에도 민간정치인들이 종전 평화를 위한 교섭에 쉽사리 나설 수 없게 만드는 제도가 작동되는 구조였다. 전쟁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에 장군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서구 선진국의 지혜를 일본은 배우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 요인은 서양과 동양의 사고방식 차이와 이런 차이점을 인식하고 좁히며 상호이해하기 위한 양측의 노력부족이다. 에둘러 말하며 행간의 뉘앙스로 이심전심 소통하기를 바라는 동양에 비해 서양은 직선적이었고 좌우양단간의 판단을 많이 했다. 전쟁 전의 화의 교섭, 전쟁말의 평화교섭에 동원된 동양의 소통방식은 탐구되기보다는 묵살되기 일쑤였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전개는 어떠하였는가? 간략히 요약한다면 41년 12월 하와이 진주만 기습과 이어진 필리핀 점령으로 초반 승기를 잡은듯 했던 일본은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박빙열세를 보이고 남태평양 비스마르크 제도를 둘러싼 공방전에서 최초 패배를 함으로써 전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정신 전력이 약해서 졌다기 보나는 무기체계, 군수조달 등 물질문명의 풍요에 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객관적일 것 같다. 일본은 미군에게도 애국심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그들이 자국군의 인명을 귀하게 여기며 보급품이나 무기체계 등의 수량과 품질에서 그들을 능가한다는데서 사기를 점차 잃어갔다.

이후 대만에 비축해 두었던 공군기지가 파괴되면서 제공권을 잃고 필리핀 탈환을 앞두고 벌인 해전에서 해군력이 무너지면서 이제 일본은 1억의 국민이 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는 처참한 전술 하나만이 남게 된다.

이는 사이판, 괌  전투, 이오지마 섬과 오키나와 섬 전투에서 패전한 군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민간인들의 집단자살로 이어졌다. 이들은 붙잡히면 미군에 의해 능욕을 받고 처참하게 살해되느니 차리리 자살이 낫다는 논리로 세뇌시켰으니 무책임한 국가 폭력의 제일가는 사례라고밖에 볼 수 없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막대한 인명과 물자를 소모했다. 아마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신형무기인 원자폭탄을 사용하기로 결심한데는 더이상 소모적 공방전은 하고 싶지 않다는 수뇌부의 판단이 있었다. 물론 원자탄도 일종의 화력이니 한  번 써보고 효과가 입증되면 전후패권 유지의 발판이 될 거라는 수판 셈 또한 한 몫했을 것임도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두 번의 원폭투하 후 일주일 이내에 일왕의 결단으로 항복 방송이 나가고 공식적으로는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주리함 선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4년간의 전쟁을 마무리한다.

이책은 특별히 교훈을 정리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추는 가능하다. 전쟁은 이해 충돌 요소를 제외하면 대체로 의사소통의 부족, 상호이해의 부족, 독선이나 자만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금의 미중갈등이라는 것도 패권 경쟁요소 경제 전쟁 요소를 논외로 한다면 대화 부족, 이해 부족, 소통하려는  노력의 부재라는 비슷한  위험요소가 감지된다.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사고 방식의 차이, 소통방식의 상이함은 더욱 탐구되고 규명되어야 한다. 한때의 강자가 독선과 자만의 태도를 견지해서는 안 되며 약자의 입장을 보살펴야만 평화가 지속될 수 있음을 역사는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다.

(202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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