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이 속의 글 읽는 어떤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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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 ㅣ 참 우리 고전 6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 돌베개 / 2005년 5월
평점 :
연암은 누구인가. 그는 18세기의 실학자이면서 중국문화를 숭상하고 <열하일기>를 통하여 중국의 정세와 세상의 진동을 감지하면서 조선 사회의 내부적인 유교적 모순을 개탄하고 비판의 활을 늦추지 아니한 인물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박제가, 이덕무와 더불어 이 세 사람의 실학자들을 개혁자, 선구자로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선구라는 것이 시대를 앞서간다는 의미이지만 시대를 앞서간다고 해서 모두 올바른 것, 정당한 것은 아니다. 진보라는 이름아래 희생되어지는 소수의 의견이 옳을 때도 있는 것처럼 진보는 대개 실패나 실수, 또는 왜곡의 성질을 본래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18세기의 진보나, 21세기의 진보나 진보는 시대와 동반자이면서 동시에 반대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조선후기의 실학자들, 그 중에서 이 세명의 사내들은 당시에 별로 큰 벼슬까지 오르지 못했고, 많은 반대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학자들에 대한 안티실학의 가장 큰 이유는 기득권 세력인 유림을 해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진보는 권력에 밀려,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한계가 있었고, 좌절감도 동시에 맛보면서 대부분 재야로 내려가 글이나 쓰면서 서양에 열려있는 중국것을 흠모하고 그것에 중한 가치를 두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아무튼, 제목조차 너무 다정스러운 이 책은 <열하일기>의 주인공이자 실학의 선각자 역할을 했던 연암의 사사로운 서간문이다. 대가의 사적인 서간문집이라니 아주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닌가. 기존의 <연암집>에 실려있던 것을 부분 발췌한 것이 아닌 <연암집>에서 누락된 <연암선생 서간첩>을 최초로 번역한, 매우 뜻 깊은 서간문집이다. 이 책의 가치는 연암 탄생 200주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아니라도 사사로운 연암의 인간성과 사견을 읽을 수 있다는 데에서 빛을 발한다. 모두 33통의 편지모음을 엮어 만든 이 책은 겉 표지부터가 작지만 격식있고 따뜻한 질감이 묻어나는 책으로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라는 빨간 글씨체를 손가락으로 만지면 금방이라도 손마디에 빨간 고추장이 묻어 나올 것처럼 옛 책의 이미지를 최대화한 편집형태를 갖추었다.
표지에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라는 단아한 글씨체를 부제로 박아 놓은 것처럼 이 서간문은 대부분 가족과 벗에게 보낸 다정다감하고 서운한 감정이 한 점 찌꺼기나 은폐 없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문호의 저작활동 역시 범인들처럼 수월하지가 않았음을 드러내는 대목을 읽다보면 글을 쓰는 작문의 행위는 명문 작가이든, 나처럼 낙서 비스무레한 것을 적어내는 아마추어이든 뼈를 깎는 일은 공통된 숙명이라는 것에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내가 지금 이리 삭막해서 글을 구상할 수가 없으니 행여 빠른 인편에 글을 지어 보내면 어떨지.."-(12쪽)
이것은 당당하게 대필을 요구하는 연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통제사에게 건내 줄 글 한 편을 자신의 현재 상태로는 온전하게 100% 완성하지 못하니, 먼저 선작(先作)을 해서 주면 그것을 대충 손 봐서 통제사에게 건네주겠다는 뜻을 자신의 처남에게 전하는 대목이다. 연암같은 실리를 추구하는 학자가 대필이라니 그도 글 짓는 일에 얼마나 골치를 앓아야했으면 이리 했을까 싶은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겠다.
"방금 전 흉중에 있던 아직 문자화하지 않은 한 편의 좋은 글을 생각해 보면 애석하게도 그 사이에 그만 저 만 길 높이의 지리산 밖에 걸려 있지 않겠니? 하지만 어쩌겠느냐, 어쩌겠어."-(19쪽)
공무중에 떠오르는 글을 미처 적어 놓지 못하고 기억만 하고 있다가 일이 한가해져 붓을 들고 그것을 적어 내려면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글은 이미 달아나고 없을 정도로 글을 잃어버린 안타까움을 '지리산 밖에 걸려 있다.'고 안타까운 속내를 표현한다. 아아, 아마추어든 프로든, 명문가든, 동네수다쟁이든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시대를 뛰어넘는 절절한 체험담이다.
그러면서 자식들에게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는다는 타박을 한다. "나는 고을 일을 하는 틈틈이 한가로울 때면 수시로 글을 짓거나 혹 법첩을 놓고 글씨를 쓰기도 하거늘 너희들은 해가 다 가도록 무슨 일을 하느냐.......중략.........너희들이 하는 일 없이 날을 보내고 어영부영 해를 보내는 걸 생각하면 어찌 몹시 애석하지 않겠니? 한창때 이러면 노년에는 장차 어쩌려고 그러느냐??-(26쪽)
부모들은 시대와 신분의 높고 낮음과 부유함의 정도를 떠나 누구나 한 마음이다. 이 대목은 어려서 우리가 부모로부터 상당히 많이 듣고 자란 반복문장이지 싶다. 자식들이 공부를 게을리하며 놀기만 하는 것 같으니 부모된 자로서는 자식들의 앞날이 개탄스러운 것은 당연지사. 연암도 어느 누구의 부모와 다르지 않아서 자식들의 무사안일을 염려하며 편지를 보내는데 편지 말미에 이 책의 제목이 등장하는 문장을 삽입하여 앞에서는 공부를 게을리한다고 질책해놓고 결국엔 자식들을 챙기는 마음을 드러낸다.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를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게다. 내가 손수 담근건데 아직 완전히 익지는 않았다."-(26쪽) 아내와 사별을 하고 홀 몸으로 지내는 연암은 양반의 신분에도 손수 고추장을 담가서 서울 사는 자식들에게 인편으로 부친다. 고추장 항아리에 담긴 연암의 자식 사랑은 그가 <열하일기>라는 대서사시를 쓴 대문호라는 거대한 사실을 잊게 해주는 소박하고 따스한 등불같은 풍경이다.
그런 애틋한 마음으로 담근 고추장을 자식들은 받아 먹고도 맛있다는 답장을 아버지에게 보내지 않는다. 내심 고추장 맛이 어떻다는-사실은 아버지의 사랑에 감복했다는-전갈을 기다리던 노년한 아버지는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전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간에 반찬으로 하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35쪽) 늙은 아버지가 공사다망한 상황에서도 손수 밑반찬을 만들어 보냈건만 아무 말이 없으니 '무람없다'고 야단을 치는 대목은 부모에게 무심한 자식의 모습들이 그려져 마음이 애잔해진다.
그러나 연암은 며느리가 만들어서 보낸 준 도포와 버선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하고, 며느리의 해산을 걱정하기도 하며 관찰사가 도내 순시할 때 많은 접대비가 든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이 서간문은 주로 가족과 자식들, 벗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였지만 간간이 박제가와 이덕무에 관한 연암의 입장이나 생각들을 보여주는 대목도 나오는데, 연암은 박제가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지만 그의 인품은 "무상무도하다."면서 깎아내리기도 한다. 수재 박제가의 영특함과 총명함, 그리고 실학적 학문의 평가는 높이 사고 있지만 박제가의 인간 됨됨이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를 내리는데, 실제로 박제가는 연암과 같은 학문을 하는 사제지간으로서는 더 할 나위 없이 돈독한 동반자였지만 연암의 표현처럼 박제가가 정말 무례한 인품을 지닌 학자였는지는 모르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암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평가인데 아직 이 두 명의 거대 실학자들이 왜 그런 모종의 보이지 않는 떨떠름한 관계였는지 상고(上考)를 해 봐야 한다고 이 책의 번역자는 말한다.
참고로 연암은 이덕무의 죽음 앞에서 "무관(이덕무)가 죽다니! 꼭 나를 잃은 것 같아."라고 탄식을 하였지만 그의 문예적 재능은 십분 높이 사면서도 이덕무의 사후에 이덕무 행장을 짓는 일에 '서얼출신으로서...'하는 말을 빼놓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연암의 출신성분의 평등사상과 이덕무의 학문적 평가에 관한 2중적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연암을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역자의 해설에만 귀를 기울여야 하는 바, 글을 쓰는 사람들,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간에도 보이지 않는 그렇고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진다는 어렴풋한 추측만 할 뿐.
이 서간문집에는 <큰아이에게>라는 편지가 가장 많이 실려있다. 그의 큰아들은 후에 연암의 형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연암의 차남인 박종채에 의하여 <나의 아버지 박지원>이 세상에 나오기도 했다. 이 서간문에 등장하는 '큰아이'는 연암의 형님에게 양자로 간 큰아들을 말하는 것으로 아들에 관한 아버지의 각별한 정(情)을 느끼게 해주는 많은 부분이 수록되었는데 중국책을 구해오고, 그것을 해석하며, 심지어 책을 베껴서까지 보내 달라는 주문까지 일일이 넣으며 큰아들과의 유대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집을 개축하고 부엌문은 서쪽으로 내며 자물쇠를 잠그고 장 담그는 일에 빚까지 내어 잘 해야 한다는 세세한 지시까지 잊지 않는 연암.
"누님에게 돈 두냥을 찾아 보내는데 언서(諺書)를 쓸 줄 모르니 네 누이동생에게 쓰게 해서 보내는게 좋겠다."-(93쪽) 한글을 쓸 줄 몰랐던 연암이다. 연암은 중국을 흠모하여 중국의 한자를 융숭하게 대접하느라고 한글을 쓰고 읽을 줄을 몰랐다. 그는 한자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21세기의 현대작가 '복거일'이 영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기억이 순간 겹쳐진다. 이 문제는 한 국가의 국어와 관련된 아주 예민한 문제라서 논란의 소지가 많았지만 내가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은 한자 상용화를 주장했던 연암이 그나마 21세기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영어에 한자까지 공용어로 삼아야 한다면 머리 큰 사람들은 능력껏 하겠지만 나처럼 용량 작은 사람들은 어떻게 쫓아가겠나. 하는 별 시덥잖은 걱정으로.
연암은 손주가 방안에서 물건들을 잘 못 갖고 놀다가 사고라도 날까봐 자식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며느리의 산후조리에까지 근심을 보이는 인간적 면모를 이 책에 수록된 33통의 편지에서 낱낱이 공개한다. 그가 <열하일기><연암집>이라는 어마어마한 문집을 쓴 대문호라는 사실을 잊고 우리들의 아버지같은 곰살맞고 자상하며 다정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연암을 두려워하지 말자.
책의 말미에 원어부록이 실려있는 것은 전문가들이나 한자풀이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을만한 성실함이었다고 여겨지며, 나는 그러한 능력이 되지 않은고로 번역자의 수고스러움으로 엮어진 <해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부분을 먼저 읽고나서 본문을 읽는다면 멀고도 어려운 연암에 대하여 두려움이 가셔진다.
손수 담근 고추장 단지를 자식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사랑, 벗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느껴지는 아침밥을 달라하는 진솔한 풍경은 호롱불을 밝혀둔 아늑한 방안에서 편지를 쓰는 연암의 모습이 그려지는 온화하고 따듯한 한 폭의 조선 수채화다.
이 속의 글 읽는 어떤 한 사람
안빈낙도 문밖을 나서지 않네.
지금 공책을 두 권 보내니
글 지어 그 속을 가득 채우길.
- 의릉의 근무지에서 중존에게 보내는 편지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