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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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가짜

 

결국 이 이야기는 허구 입니다. 한마디로

가짜라는 거죠. 다만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인지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주인공의 존재만 가짜고, 나머지

는 모두 진짜입니다.

 

 

프라하의 묘지 1

작가
움베르토 에코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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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2

작가
움베르토 에코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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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란 그런거다

 

문서위조 및 허위문서 제조를 업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손에서 간단하고 사소한

것부터 거대한 음모와 역사까지도 만들어

집니다. 그 효과는 절반쯤은 의도한 대로이기도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의도하지 않았거나 우연한

효과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요.

거짓말이란게 그런거 아니겠어요?

 

 

 

프라하의 묘지

 

'프라하의 묘지' 라는 건, 주인공이 만들어

어느 이야기의 소재입니다. 프라하의

어느 묘지에서 있었음직한 유태인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였죠. 유대인들의 세상을 꿈꾸고

세계를 통치하는 전략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 가짜의 이야기는 반유태인 정서와 유태인

혐요주의를 만들었고, 훗날 나치에 의해 참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학살된 유태인의 수가

얼마였죠? 600만명? 그 대학살의 논리적 근거가

어디서부터 시작된건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건국과

분쟁속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의심을 의심하다

 

움베르트 에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은근 간단하면서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첫번째 질문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에 관한 이야기겠지요. 책을 읽고나면

불현듯 '의심' 이란 놈이 우리를 덮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죠?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과 역사가

진실로 일어난 것인지 어떻게 확신하죠? 혹시

누군가에 의해서 날조되거나 의도된 것이거나

정교하게 짜여진 시나리오에 의한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이

가짜인지 의심하고, 그 반대로 가짜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혹시 진짜는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 책도 그래요.

읽다보면 이 책 속의 이야기가 가짜가

아니라 혹시 진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단 말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무엇이든 믿을 수 없게 되고, 논리적

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보게 된다면, 

바로 여기서부터 음모론의 싹이 트게 되겠죠. 

 

 

 

희생양

 

그리고 움베르트 에코가 던지는 두번째

질문은, 아무래도 '희생양은 누구인가' 라는

문제일 겁니다. 위선과 거짓에 기반한 사회에서

우리는 누구를 공격하고, 누구를 음모의 제물로

삼느냐는 얘기죠. 체육시간이라 교실을 비운

사이에 총무가 거두었던 급식비가 사라지면,

소문이 나쁜 친구들이 의심받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소문은 소문일 뿐이죠.  운동장에서

같이 뛰었던 알리바이 확실한 친구까지도

의심받습니다. 이래저래 좋지 않은 사건들마다

유태인을 결부시켜서 정작 사건의 당사자들은

교묘히 빠져나가고,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사건을 무마하려는 이 더러운

짓거리들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비단 유태인들 만의 문제일까요?

아메리카에서 차별받고 사건들마다 의심받았던

흑인은요? 관동대지진 때 일어났던 조선인

대학살은요? 나쁜 것들은 종북 빨갱이로 몰아

가려는 현재 대한민국 정치꾼들은요? 외국인

노동자와 조선족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 속에 혹시 유태인들이 겪었던

그 무언가가 들어있지는 않나요?

 

 

 

몸이 힘든 책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읽기는 참 몸이 힘들어요.

정말 페이지마다 가득가득 꽉 차있는 텍스트를

그저 읽는 것만해도 일단 고역입니다. 눈도 힘들고

목도 아프고 어깨 허리 다리 뭐 이곳저곳 가릴 것

없이 온몸이 쑤시고 아파요. 또 내용은 어찌나

많던지요. 장미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산만하지는 않습니다. 계속해서 어느 한 목표

향해 달리고 있으며,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확실히 존재한다라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꾸역꾸역 읽는게 좀

괴롭기는 해도 완독했을 때의 쾌감! 역시 그만큼

크게 얻을 수 있는게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지

않을까 싶네요.

 

 

움베르토 에코를 읽는 자세

 

제가 아는 누군가가 그러더라구요. 이런 책은

스탠드 켜고, 딱딱한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서

봐야 한다고 말이죠. 오로지 읽고 있는 그 책에만

집중해서 가열차게 오직 독서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뭐 그렇게 읽어야 될 법한

책들이 있기는 해요. 진짜 말 그대로 '텍스트'

읽기인거죠. ㅎㅎ 차차 소개해 드릴게요. 기대해

주세요. 그래도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 중에서

이 '프라하의 묘지'는 그래도 수월하게 읽히는

편입니다. 언제 한번 '장미의 이름' 도 한번

리뷰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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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일단 무조건 믿고 사는 나오키상 수상작이  

또 하나 나왔습니다. 148회 나오키상 수상작

아사이 료의 [누구] 입니다.

 

 

 

누구

작가
아사이 료
출판
은행나무
발매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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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소설 속으로

 

꽤 젊은 감각의 소설입니다. 소셜 네트워크를

소재로 했구요. 특히 트위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트위터를 좀 해보신 분이라면 바로 이해하실

듯 한데, 안해보신 분이라면 이게 뭔소리야..?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뭐 그래도 좋습니다.

무슨 SNS냐는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소설에서

중요한 건, 진짜 '나 자신'과는 다른,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 자신' 사이의 괴리니까요. 

 

누구

 

소설은 이제 막 대학을 마치고 취업준비를

하는  어느 젊은 남녀 다섯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서로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함께 취업을 준비합니다. 누구는 취업에

성공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실패하기도 하죠.

사람 살아가는게 다 그렇듯, 그러는 동안

그들 사이에도 희노애락의 일들이 발생해요. 

그러면서 그들 각자 생각하고 느낀 바가

있겠지요. 당연하지만 사람마다의 감상이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네, 충분히 그럴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이잖아요.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지만,

이제 자신의 생각을 말이든 글이든 행동이든

표정이든 밖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다들 한번쯤은 그래봤을걸

 

누구나 한번쯤은 그럴 때 있잖아요. 진짜

속마음은 감춘 채 다른 말을 해야할 때 말이죠.

아부성 발언부터 선의의 거짓말까지 참 다양한

상황을 맞기 마련이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인상을 쓴 채 욕을 하고 있는 상황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아무 문제 없어요. 마음속으로 상상은

무슨 짓을 해도 아무 상관없어요. 그 어떤 끔찍

하고 반인간적인 것도 상관 없다구요. 이제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짜증나고

화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뒷담화 까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 이거 정말 최악의 상황

이지만 - 그 이야기를 당사자가 듣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구요. 어떨 거 같으세요?

 

 

겉다르고 속다른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유사 이래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 반복될, 겉과 속이 다른

상황, 바로 '괴리' 야 말로 이 소설을 압축해서

표현해 낼 오직 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많은 '괴리' 가 있을 수 있겠죠. '보여지는 나'

와 '진짜 나' 사이에서 바로 '나 자신'이 느끼는 

괴리, 또 그것을 바라보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

이 느낄 괴리. 네트워크 시대에서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나 자신이 느끼는 괴리, 또

그것을 바라보는 타인의 괴리, 이 모든 요소의

연결 사이에서 '괴리' 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뭐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경험 있잖아요. 온라인

에서 허세 떨고, 이쁜척, 있는 척, 아닌 척. 영화

'접속'에서 전도연이랑 한석규가 채팅하면서

그러지 않았어요? 영화'미녀는 괴로워' 에서

김아중이 진짜 모습은 감춰놓고 폰팅하잖아요.

진짜 모습도 그런가요? 정말?

 

 

친근한 이야기 속 깊이있는 메시지

 

수단과 도구는 바뀌었는데 그걸 쓰는 사람은

별로 바뀐게 없어요. 네트워크와 SNS가 발달

했는데 그걸 쓰는 사람은 별로 변한게 없죠.

오히려 현실의 나 와 온라인 속의 나 사이의

괴리는 더 커졌으면 커졌지 반대는 아닐걸요.

소설에서의 소재는 아주 현대적이고 젊은이들의

것일지언정, 그 속에서 다루는 내용은 일반적

이면서도 보편적인 무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쓰기 힘든 작품이며, 더 훌륭한 작품이기도

할거구요. 겉과 속이 다른 자아의 괴리, 존재의

이중성, 악용되는 온라인에서의 익명성, 그러한

가운데 느끼게 되는 혼란과 불안, 자아 분열,

소외감과 외로움, 그리고 관심에 대한 집착에까지

이 소설을 깔아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게

너무나도 많아요. 하기야, 이정도니까 나오키상

받은거겠죠. 뭐 아무나 받는 상도 아니고 말이죠.

 

 

역사와 신뢰의 나오키 수상작 

 

마음먹으면 꽤나 깊고 심오하게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참 감각적이면서도

참신하고도 젊은 감각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작가가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지요. 젊은 독자의 입장에서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었어요! 역시나 일단은 믿고보는 나오키

상 수상작이예요. ㅋ

 

 

다른 나오키 상 수상작 보기!

127회 수상 [살다] : http://blog.naver.com/opusdog/130172747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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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차가운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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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잘사는 집, 잘나가는 가족들은 둔  

재수생이 있습니다. 무조건 명문대에

들어가라고 쪼셔대는 엄마로부터 이

재수생이 받을 압박은 왠지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듯 하네요. 일그러진

현실 속에서 정신까지도 조금씩 왜곡

되어가던 이 학생은 입시학원에서

여자친구를 만납니다. 그리고 재수생은

살인을 저지릅니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재수생이 저지르는 살인 사건이 바로

터지기 시작합니다. 

 

 

 

 

달고 차가운

작가
오현종
출판
민음사
발매
201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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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감상은 쓰기가 대단히 조심 

스럽습니다.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스포일러가 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 것이지, 줄거리

를 알리기 위한 감상문은 아니니 아마

스포일러가 포함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일단 스포일러 라는

단어 자체가 붙은 작품치고 충격과

반전이 없는 작품도 없습니다. 네, 이

작품도 참 놀라운 반전과 쇼킹한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스토리

자체부터 끝내줍니다. 마지막에서 

아주 그냥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뭐랄까요. 추리소설에서 흔히 느끼는

그런 팍 꺾어주는 반전? 다소 가벼운

느낌의 반전 같은 느낌은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무게감 있으면서도 치명적안, 그리고

헤어나올 수 없는 구덩이의 깊고 어두운

느낌 같은 그런 반전과 결말이라고 해 두죠.

 

 

 

스토리도 스토리거니와 이 책은 참 볼만한게

많아요.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야기 속에

묻어둔 것들이결코 적지 않다고 느꼈다고나

할까요. 특히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건 '지옥'

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너의 지옥,

나의 지옥, 그리고 서로의 지옥 비교, 각자의

지옥으로의 초대, 지옥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결국 여기가 왜 지옥일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각성. 작품이 참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책 마지막 부분에 달린 작품 해설이 참 볼만

했는데요,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작품이 있다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작품해설에서 다룬

죄와 벌 과의 비교를 보면서 공감해 마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죄와 벌'을 죄, 벌 그리고 구원

으로 요약해 보자면, '달고 차가운' 은 죄, 벌

그리고 파멸 이 아닐까 생각해요. 말하자면,

'죄와 벌' 의 오마쥬 이먼서, 다크 버전인

셈이지요.

 

 

 

이 책은 민음사에서 출판하고 있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입니다. 첫번째 작품인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이은 두번째 작품이네요.

첫번째 책도 재미있었는데, 두번째 책은

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리즈도 꽤

기대가 됩니다. 민음사 관계자 분 힘내주세요!

 

[아무도 보지 못한 숲] 감상 보기 : http://blog.naver.com/opusdog/130173996272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혹시 책구매를 망설이고

계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사 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다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절대 아니며, 다소 어둠으로 채워진 작품이란

점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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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야행로 창비세계문학 17
시가 나오야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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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신'

 

최근에 일본 작가 시가 나오야의 [암야행로]

를 다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주 궁금했던

것은 이 분의 별명이 '소설의 신' 이라는 점이

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소설을 썼길래 저런

별명이 붙은건지 정말 저를 궁금하게 만들더

라구요. 다읽은 지금에서 얘기하는 거지만, 

훌륭한 작품이라는 점에는 매우 동의하지만 

소설을 읽을 땐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암야행로

작가
시가 나오야
출판
창비
발매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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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대락의 줄거리와 소개는 의외로,

지식백과 검색에 잘 나와 있더라구요! 지식

백과의 내용도 참고하시면 좀더 책소개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암야행로

주인공 토키토오 켄사쿠(時任謙作)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그 직후 갑자기 나타난 할아버...

인문과학 > 문학 > 일본문학 > 일본소설

출처 : 지식백과

 

 

두가지 매력, 스토리와 심리묘사.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두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첫째는 묘하게 연결점을

가지며 이어지는 스토리일 것이고, 둘째는 인물의

심리와 감정묘사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부는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2부는 아내의 부정을 알게된 주인공 으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겁니다. 1부에서는 자신이

부정한 관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사건에 이어 2부에서는

묘하게도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부정한

관계의 당사자이면서 피해자가 됩니다. 

바로 그 자신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역지사지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신이

다시 서게 되는거죠. 

그러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아버지가 경험했을

느낌과 감정,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을

태도와 시선, 그리고 아버지가 그의 자식 아닌

자식을 보며 느꼈을 복잡한 심경을 아버지와 공유

하게 됩니다. 마치 운명의 장난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이 묘하디 묘한

이야기의 전개와 설정에 뭐라 딱 집어 형언하기

힘든 씁쓸함과 애잔함을 느낍니다.

 

특히 이 책이 다른 소설이나 작품들에 비해

독특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뛰어난 점 한가지는

인물의 감정과 심리묘사에 있습니다. 대단히

세밀하고도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생각과 감상을 아주 날카롭게 그려냅니다.

일단 소설 속의 출생의 비밀과 배우자의 부정

같은 소재나 사건이 그리 단순하거나 일상적인

것들도 아니거니와, 인간의 감정을 폭풍처럼 

휘몰아치게 만들 요소들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작가는, 온갖 감정과 상념들이 몰아칠 그 격동 

속에서도 자신의 페이스와 호흡을 잃지 않은 채

인물의 심리를 냉철하고도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단순한 몇마디로 표현

하거나 뭉뚱그려진 채 표현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감상을 그리면서도 그 디테일과

날카로움을 전혀 잃지 않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만큼 날카롭고도

세밀한 심리묘사는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타인의 이해가 자기 성숙으로

 

독자들은 무언가 초조하고 불안하면서도

비틀어져 있고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점차

변해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캐치해 낼 수 있습니다.

최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무언가 한결 평온하고

여유로워진 주인공을 볼 수 있어요. 그겨 겪었던 

힘든 일들과는 별개로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 가족,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드디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타인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결국 자아의 발견과 성숙을

위한 토양이 되는 것은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정중동, 유유한 흐름 속 감정의 격류 

 

책장이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았던 것은 세밀한

심리와 감정묘사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내용이 어렵거나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든 것은

아니지만, 인물의 감정과 심리에 공감하고 이해

하면서 읽는데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마음

으로 이해하며 읽기란 긴 호흡을 필요로 하기도

하구요. 그러면서도 소설은 결코 가볍거나 감정의

겉껍질만을 보여주는 형태가 아닙니다. 다 읽고

나서 보니 작가의 표현과 묘사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구나 뒤늦게 깨닫고 있는 중이기도 해요.

유유한 분위기 가운데에서도 격류처럼 흐르는

정중동의 감상이 독자를 지배하면서,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암야행로, 이 제목이 좋다

 

잘 보이지도 않는 밤길을, 내심 불안하고 긴장한

가운데서도, 말없이 묵묵히 더듬더듬 어두운 길을

따라 걷듯, 그렇게 살아가는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앞에 그의 아버지가 먼저 그 어두운 밤길

을 걸었겠지요. 암야행로란 제목은 참 정말 이 작품과

잘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저는 이 제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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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노상
앤드류 밀러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 문학세계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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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역사소설인가 

 

아니, 이게 왜 역사소설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

만 봐서는 전혀 역사스럽지 않은데, 모

신문이 뽑은 '최고의 역사소설 10편'에 

선정되었다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

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 뿐만이

아니죠. 그냥 묘지 옮기다가 생긴 사건들

을 소재로 한 소설인 듯 한데 심지어 

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이건 또 

뭔가요? 그저 프랑스 혁명 전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점 때문에

역사소설로 분류되는 건가요?

 

 

 

혁명의 '혁' 자도 없는데

 

왠지 수양대군과 단종 나오고, 한명회가

살생부 쓰고, 악랄함의 대명사 장희빈

뭐 이런거 나오고, 최수종 아저씨가

말타고 나와서 신라부터 고려, 조선까지

나라를 세워야 역사 드라마이고, 역사

소설일 듯 하지 않나요. 한국에서의

역사적인 사건을 작품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들이 있듯이 프랑스에서 잘 쓰이는

소재는 단연 프랑스 혁명일 겁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었죠.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세계사를 놓고 보아도

큰 사건이었다는 것 쯤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 소설의 이면

에는 프랑스 혁명이 숨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혁명에 '혁'자도 나오지

않는 이 책은 보기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도

무서운 소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상소설? 그건 먹는건가요?

 

어느 책 서평이나 책 소개글을 참고하자면

이 책은 역사소설 보다는'사상 소설'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정말로

사상 소설이라면 책을 읽어내는게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을거란

걱정이 밀려옵니다.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오신 분들께 너무 겁부터 준건가요? 하하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심오한만큼

좋은 책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레지노상

작가
앤드류 밀러
출판
문학세계사
발매
20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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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노상 Les Innocents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건축을

공부한 엔지니어인 주인공은 파리 중심에

위치한 레지노상 공동묘지를 철거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 공동묘지를 철거하는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해골들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는

이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운 일이며 이 무시무시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 인부들은 거의

패닉 상태가 됩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인부들을달래가며 계속해서

작업을 진행해 나갑니다만, 공사를

진행하던 중 몇가지 사건들이 발생

합니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인부가

부상당하고 유골의 날카로운 뼈에

찔려 독이 올라 사경을 헤매죠. 어떤

인부는 아예 도망가 버리기도 합니다.

도시 여기저기에 반란이나 혁명과 묘지

공사를 연관시킨 낙서가 돌아다니구요.

주인공은 하숙집에서 묘지 철거에 반대

하는 하숙집 딸에게 자는 중 머리를

가격당해 사경을 헤매기도 합니다.

인부들은 매춘부를 불러 공사장인

공동묘지를 한순간 음탕한 공간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죠.

주인공의 동료였던 인부대장이 공사를

도와주던 묘지 교회지기의 딸을 강간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묘지의 교회

철거작업에서 생긴 사고로 인부가 죽은

후 인부의 시신을 태우는 의식과 함께

교회가 타면서 묘지에 화재가 발생합니다.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주인공은

공사를 계속 진행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책임자로서의 자리를 사임하려고

하나 반려당하고 결국 공사를 마무리

합니다만 공사가 끝난 후 그 어떤 활력같은

것이 죽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가오는 혁명의 그림자

 

이 책의 작가 앤드류 밀러는 1786년

레지노상 공동묘지가 이전된 것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얼마

전이었다는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글을 썼다고 말합니다. 우선 짚고

넘어 가야할 것중 하나는 소설 이곳

저곳에서 보이는 혁명에 대한 암시일

겁니다. 낡고 완전히 썩은 교회건물을

철거하면서 지붕에 구멍을 내자 은총

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빛,

묘지를 파내자 뒤엎어진 땅에서 새로이

자라는 꽃과 풀들, 무엇보다도 악취를

풍기며 시체가 썩어가는 공동묘지를

파 내고 도시를 정화시키는 작업이야

말로 혁명의 상징이자 예고일 겁니다.

 

 

 

'자신의 이성 이외에 그 무엇도 섬기지

않는 자유인에게만 태양이 비치는

시대가 오리라'

 - 니콜라 드 콩도세르 후작

프랑스 계몽주의로부터 시작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혁명의 사상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성을 억압해 온 많은 특권과

실정법에 대한 이성의 투쟁이 바로

혁명이었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그러한

혁명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인간의 정신', '완전한 이성' 혹은 '순수

이성'이겠지요. 묘지의 철거를 통해

파리를 정화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신념를 가진 주인공의 모습에 자유로운

이성을 찾고자하는 혁명의 모습과 

겹쳐보면, 소설에서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순수'는 바로 이 '순수 이성'이지

않았을까요.

 

 

 

'순수'는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혁명

과도 같은 이 공동묘지 공사에 임하는

일꾼들은 그리 이성적으로 보이진

않는게 함정입니다. 해골들이 가득한

이 공사장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광기와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보이는 인부들의 모습을

작가는 적나라하게 그려냅니다. 비단

인부들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신부는 이미 미치광이가 되어 있구요.

몇글자의 낙서가 도시의 사람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삶에서 익숙한 공간이었던

공동묘지의 철거를 견디지 못하고

공사 책임자인 주인공을 공격합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이성에 역행하는

인습과 전통, 관습과도 같은 공동묘지

의 철거에 반대하는 것은 이성적인

관점에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우리의 엔지니어

주인공 마저도 순수하고 완전한 이성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찾는 '순수'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 봐야 합니다.

 

 

나약하고도 나약한 존재

 

생각보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며 굳건한 신념과 의지를 가진

존재들이 아닙니다. 해골더미와 어둠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불안한 이성과

미약한 신념 그리고 선천적인 나약함을

지는 존재들이 벌이는 혁명은 성공할

수 있는건가요? 이미 혁명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는

분명히 혁명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돌아 봅시다. 혁명은 성공적이었던가요? 

순수한 이성을 향해 혁명은 이상적인

방향으로 수행되었던가요? 그래서 우리는

자유로운 이성의 세계를 얻었나요? 순수

하지 않은 존재들이 순수를 찾는것은

자가당착의 모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피를 뿌리면서 이성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가던 혁명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역사 속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이렇게 이 소설은 혁명의 전과 가운데, 

종결과 그 이후까지 아우르는 혁명에

관한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역사

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실존와

이성, 사상과 철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상 소설이기도 한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소설 속에서는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교차합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여기저기서 우리의 의식 속에 숨은

비이성의 문제를 계속해서 끄집어 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자르면서 공포의

아이콘이었던 단두대 - 기요틴 박사가

이 소설에서는 그나마 가장 성실하고

순수하며 이성적인 인물로 보입니다.

물론, 칼날을 내리면 목을 치는 항상

일정하면서 일관성있게 반응하는 단두대

야말로 그 존재 자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완전하게 이성적인 존재일

겁니다만 동시에 많은 이들을 패닉과

공포에 빠뜨렸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분명 작가의 의도적인 비유겠지요.

역시 문제는 기요틴에 있는 게 아닙니다.

기요틴을 보는 우리가 문제인 겁니다.

강간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부대장의 '한때는 내 속에도 선한

마음이 있었다' 는 말은 참 의미심장합니다. 

죽기 전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자신의

비순수, 비이성을 고백하고, 그런

자신에 관한 문제를 머리에 총을 

쏘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공동묘지라는 부패한 공간을

치우기 위해 불러온 일꾼들이

다시 그 곳을 어지럽힙니다.

시신들을 완전히 파내고 정화

되어야 할 공간에 또 새로운

시신이 몰래 묻힙니다. 공사가

끝나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궁에서

나오면서 주인공이 본 죽은

코끼리, 아프리카인이었던

성 오귀스틴께서 어쩌면 본 적

있을 지도 모를 그 코끼리를

들어올리기 위해 일꾼들을

닥달하는 관리와 패닉에 빠진

일꾼들을 보면서 공감과 연민 

을 느끼는 주인공을 보면서

우리는 이 불행한 일들이 어디선가

또 반복될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어요. 어쩌면 그것은

불완전하고 무력한 존재의

숙명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로다

 

철학과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은게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던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조금더 인문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었다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의를 명확하게 깨닫고 더

심도있는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무지와 얕은 지식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책 자체는 정말 대단히 좋다고

생각힙니다. 역사와 철학과 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거대한 메타포

에 실어 보내면서도 효과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가 가진 엄청난 내공, 사유의

깊이와 글쓰기 재주에 대한 반증일

겁니다. 오랫동안 곁에두고 보면서

계속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책, 이런 책이 '양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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