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궁금한 건 제목
무엇보다도 도대체 왜 이 작품의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일까에 대해 꽤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그 해답을 그때엔 찾을 수 없었구요. 그러다보니
이 영화의 원작을 좀 읽어봐야겠다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2013년 지금에야
비로소 원작을 읽어 보았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도
한동안 계속된 제목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통해 저
나름대로의 답을 찾긴 했지만, 글쎄요. 그게 맞는
답인지는 전혀 확신은 없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크게 보면 한 사건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미서부 어딘가에서
마약거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우연히
지나게 된 모스는 시체와 트럭과 총과 마약이 널브러진
그 곳에서 돈다발이 든 가방을 줍게 됩니다. 여기서 그 돈으로
잘먹고 잘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다시 한번 사건의 현장에
갔다가 정체가 드러나고, 갱단에게 쫓기게 되요. 특히
냉혈한 살인마 안톤 시거의 추격을 받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계속해서 따라가는,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보안관 벨이 있어요. 소설은 모스와 안톤
시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보는 시선, 그리고 이 사건을
따라가는 보안관 벨의 시선 이렇게 두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이야기를 번갈아 가면서 들려줍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 해서는 안되는 것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스가 돈가방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이 이야기의 끝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미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스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이란 걸 알면서도 그 사건현장에 다시
가보게 되고, 거기서부터 이 모든 불행이 시작됩니다.
아마 그도 그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코매 메카시의 작품 전반에 걸쳐
있는 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코맥
메카시의 다른 작품들을 리뷰하면서 계속해서 얘기 나눠
보도록 할게요. 최근에 나온 '카운슬러' 도 그렇고,
'모두다 예쁜 말들' 에서도 뭔자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들에
손을 대면서 끝내 비극을 야기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안톤 시거, 그 이름을 기억하라
이 소설은 정말 역대급 희대의 살인마를 배출해 내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살인마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모자란 희한한
캐릭터를 토해 냈단 말입니다. 파괴자? 묵시록적 존재?
완전히 미쳐버린 살인광? 사이코패스? 뭐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뭐라고 해도 이 안톤 시거라는 캐릭터를 표현해
내기엔 역부족일 것 같습니다. 뭐 거의 영화 '양들의 침묵'
의 한니발 렉터 나 '다크 나이트'의 조커 만큼이나 강렬한
캐릭터라고 할 만해요. 아무런 감정과 동요없이 해야
할 일을 하고 거기에 방해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없애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그는 진정한 '자연인'일
겁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그에게 살인은 '사람을 죽인다'
라는 어떤 의도를 가진 이벤트라기 보다는 그냥 숨쉬기
처럼 자연스럽고 특별하지 않은 일들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이 인간이 미쳤다거나, 아무 생각없이 사는
존재라고 하기에는 적절치는 않아요. 그는 분명 어떤 '방향'
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죠. 어떤 일이 필연적으로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방향을 따라 그는 행동하고
흘러갑니다. 다만 그 행동과 방향에 안톤 시거는 사적인
생각이나 감상을 첨가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야말로
'자연인' 인 거죠.
어느 보안관의 나즈막한 독백
소설은 보안관 벨의 회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진정한 파괴의 예언자, 안톤 시거의
뒤를 쫓았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의 옛 이야기들은
소설 전반에 걸쳐 계속됩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청년시절, 그리고 그의 보안관
생활과 은퇴를 마주한 현실까지 조용한 독백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가 보는 세상에 대한
평가와 잠언을 들려준달까요. 딱히 이야기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거나 메세지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얘기들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세상은 생각만큼
나긋한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주 험악한 곳도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세상에 대한 뭔가가 보이긴
하는데 아직 젊은이들은 그런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떨어지고 노쇠하게 되고, 젊은이들은
천방지축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른다. 그렇습니다. 뭐 특별한
이야기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닥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예요.
한 개인의 인생과 세상에 대한 경험과 연륜이 담긴
나즈막한 독백 이라고 말하면 가장 적절하지 않을 까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리고 이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an'
이란 제목에 대해 좀 살펴보죠.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첫 구절을 따온 것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 자연스레 그 시를 읽어볼 수 밖에 없었어요.
시부터 한번 볼게요.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저것은 노인의 나라가 아니다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팔짱 낀 젊은이들, 나무 위 새들
-- Those dying generations -- at their song, - 그 죽어가는 세대 - 그들의 노래에,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연어 폭포, 고등어 우글대는 바다,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물고기, 짐승, 새들이 여름 내내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잉태되고 태어나 죽는 모든 것을 찬양한다.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모두가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Monuments of unaging intellect.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엔 관심이 없다.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늙은이란 하찮은 것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막대기에 걸친 누더기일 뿐이다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육신의 옷이 너덜너덜 해지는 것을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영혼이 좋아 손뼉치고 크게 노래하지 않는다면,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혹은 영혼의 장엄한 기념비를 배우지 않는다면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노래를 배울 곳은 아무 데도 없다.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그래서 나는 바다를 항해하여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왔다.
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 오 벽의 황금 모자이크 그림 속에 있는 듯
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 신의 거룩한 불 속에 서 있는 성현들이시여,
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 그 성화에서 원을 그리며 내려오셔서
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 주시라.
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 내 심장을 다 태워버려 주시라, 욕정에 병들고
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 죽어갈 동물성에 사로잡혀
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 제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 심장을 -그리고 나를 거두어 주시라
Into the artifice of eternity. 영원히 죽지 않은 예술품 안으로.
Once out of nature I shall never take 자연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다시는
My bodily form from any natural thing, 어떤 자연물에서도 내 육신을 취하지 않으련다.
But such a form as Grecian goldsmiths make 대신 그리스의 금 세공인들이 망치질한 금과
Of hammered gold and gold enamelling 황금 유약을 발라 만든 형체를 취하여
To keep a drowsy Emperor awake; 졸고 있는 황제를 깨우리라.
Or set upon a golden bough to sing 아니면 황금 가지 위에 앉아
To lords and ladies of Byzantium 비잔티움의 귀족과 부인들에게 노래해주리라
Of what is past, or passing, or to come. 지나간 것과 지나가는 것들, 그리고 다가올 것에 대해.
노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제가 이야기하고픈 것은 시에 대한 현란한 해석은 아닙니다.
다만, 시를 읽고서 지성과 진리와 자연의 것들을 존중하고
중요시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나라를 벗어나, 노인은 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향한다 라는 정도만 캐치해 내면 될 것
같아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말자구요. 그리고 벨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청년과 중년의 시간을 지나 이제 슬슬
노인의 길로 접어드는 즈음에서,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세상과 삶에 대한 소회와 감상이 바로 이 소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함축된
단 하나의 문장, 그것이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아닐까요.
좀 어렵나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말았으면 합니다. 어디서도 듣도
보도못한 살인과 폭력장면, 그리고 책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철학적인 대사와 독백들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의미와 메세지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굉장히 궁금하고 고심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폭력과 철학적인 문구들은 코맥 메카시의 모든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이기도 한데요, 이 중 어떤 것들은 주제 의식이나
작가가 던지는 메세지와도 직결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반드시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고 그 중 많은 것들은 주제와는
별로 관련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혹시 작품의 이러한
부분들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닐까 너무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혹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저의 책읽는 깊이의 부족이 드러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코맥 메카시 작품들을 계속해서
리뷰해 나가면서 좀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게요.
배보다 사공이 더 많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면 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는 작품에 대한 해석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다양합니다. 그만큼 해석과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긴
작품이라고 해야겠죠. 처음 시작할 때 이 작품은 거대한
메타포처럼 보인다고 말씀드렸듯, 상당히 추상적이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각자의 해석의 영역은 여러분들의 지적 유희를
위해 남겨둡니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을 찾아보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정도 깊이있는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영화가 소설을 따라오지 못하는게
대부분입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도 상당히 좋습니다.
빠지거나 왜곡된 부분 없이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원작에 비해 영화가 빈약하다거나 엉망이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영화라는 포맷이 영상을
이용한 매체다 보니 살인이나 폭력장면의 묘사에 다소
집중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일단 피튀기는 액션 장면에 먼저 반응할 수
밖에 없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그저
단순한 미치광이 살인마의 액션 스릴러 정도로만 보이지는
않는 것은 곳곳에 들어 있는 철학적인 대사와 등장인물들의
행동들 때문일 겁니다. 분영 이 영화는 뭔가 더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을 것이고, 그 메세지를 파헤쳐 보고 싶다는
욕구를 물씬 일으키게 한다고나 할까요. 저 역시 원작을
읽어 보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죠.
그리고 나머지
재미삼아 얘기드리는 건데, 코맥 메카시의 작품 전체를
보면 말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물론
미 서부와 남부의 생활에서 말의 존재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기도 하니까 그렇겠지만요,
그래도 코맥 메카시는 승마와 말 덕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듭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는 말은 안나오지만 자동차가 많이 나와요. 그것도
아주 자세한 묘사와 함께 연식과 세부 모델명과 제원까지
상세하게요. 말만큼이나 자동차도 좋아하봐요.
다음번에는 코맥 메카시의 작품 <카운슬러>가 리뷰해
볼게요. 이 작품도 얼마전에 영화로 개봉했었죠?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만큼 기대하셔도 좋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