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쓸쓸하냐 - 2004년 1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운문산답 1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 사상사나 삶의 전기에서 젊은 날의 누구누구 또는 만년의 사상이라는 구분으로 한사람의 생평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꺽어서 바라보는 그 사람의 내면적 변화를 우리가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러한 변화의 전환점을 이현주 목사의 이 즈음에 나온 책에서 많이 보게 되었다.

사회의 참여적 종교 활동에서 열린 종교적 경험으로 홀로 걸어 나와 이제는 어느 누구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종교적 깨달음으로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종횡무진 걸림 없이 바삐 걷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우리가 얼마나 숨이 가쁜지 우리는 이제 뒤쫓아 가기도 힘들게 그는 앞서 가버린 것 같다...그리고는 끊임없는 호흡처럼 쏱아지는 그의 말씀을 생명수처럼 퍼마시는 우리는 너무 수월하게 목마름을 채우는 것은 아닌지...

이아무개라고 이름 없는 이름으로 살 때부터 그의 진짜 모습을 알아보았어야 했는데...예수가 아니라고 해도 예수의 말씀을 알아듣고 자신의 종교 이야기를 내뱉을 때부터 그의 속내를 들어다 보았어야 했는데....

그리하여 '물과 나눈 이야기'에서 '내가 귀를 열면 돌이 입을 연다. 그리하여 그의 입이 하는 말을 그의 귀가 듣는다'라고 말을 할 때 이미 그는 자신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깨달음의 사람임을 우리가 온전히 받아들었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미 그는 자신 속에서 답을 구해버린 사람이 아닌가? 모든 물음 앞에서 이렇게 쉽게 모든 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그래서 자신의 답 속에서 한 우주를 이루어 내고 운문산답(구름이 묻고 산이 답한다)이 우문산답(어리석게 묻고 흩어러진 답을 하다)으로 세상으로 오해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나로서는 걱정된다. 세상의 오해나 몰이해로부터 진작 마음거둔 발걸음으로 홀홀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갈 지라도 말이다.

그가 묻고 그가 답하는 그 자리에는 우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적어도 그의 문답 속에는 그의 문답을 지켜듣고 있는 사람들의 자리가 없다. 쓸쓸함을 이야기 하거나 사랑을 이야기 하거나 밥을 먹거나 지렁이 앞에 서거나 전쟁을 이야기하거나 간에 모두 매 마찬가지다. 남의집 잔치에 가서 할 일 없이 서 있다가 머슥하게 돌아 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가 고파서 잘 차려진 뷔폐에 갔는데 배고픔을 채우지 못하고 왔다면 나의 입맛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주인의 음식 솜씨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차림이 옹색한 나의 모습이 얼어 붙게한 식당의 화려한 분위기를 탓해야 할까? 그의 물음이었기에 그의 답을 쫓아가는 나의 문답이 모자라는 탓인가?

그래서 “쓸쓸한 만큼 쓸쓸할 때 그래도 쓸쓸하냐?” “많이 덜해 졌습니다.”라고 운문산답한 지은이의 심정과는 달리 이 책을 읽고난 나의 심정은 “아직도 쓸쓸합니다....아니 더 쓸쓸해졌습니다. 이 손님이 오래 머물 예정인가 봅니다”라는 말이 자꾸 되뇌어 진다.

나의 기분이야 어떠하든 그래도 우주 간에 덜 쓸쓸해진 그의 미소진 표지 얼굴이 너무 반갑다. 정말 그와 함께 겨울밤을 새며 산과 구름이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의 노년을 함께 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